“대통령 빼고 알 만한 사람들 인사청탁은 다 받았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한 현직 공공기관장은 최근 사석에서 이같이 토로했다. 이명박 정권 시절 금융공기업 인사담당 임원을 지낸 또 다른 인사는 “청탁자 중에는 감사원 고위직도 있었다”며 부탁을 들어주지 않다 청와대에 불려가 혼난 경험을 소개했다. 최근 강원랜드 등 공공기관 10곳 이상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지금 드러난 문제는 빙산의 일각일 뿐, 공공기관 채용청탁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일어난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을 이들의 말에서 추측해볼 수 있다.
정부가 27일 전체 공공기관과 유관단체 등 1,100여곳의 지난 5년치 채용 현황을 모두 조사하고 무관용 원칙을 내세워 관련자에게 최고 수준의 징계를 내리겠다고 밝힌 것은 만연한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이번 기회에 뿌리 뽑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비리 관련 채용자를 퇴출시키고 청탁자의 실명을 공개하는 조치들은 기준·대상을 선정하는 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악의적인 투서가 빗발쳐 진위를 가리기 어려울 수 있다. 또 칼날의 방향이 지난 정권을 향한 ‘제2의 사정국면’으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우선 기획재정부 제2차관을 본부장으로 하고 국민권익위원회와 경찰청,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대책 본부’를 구성하고 경찰청과 권익위에는 ‘채용비리 신고센터’를 설치해 각종 비리를 샅샅이 찾아낼 계획이다. 다음 달까지 전수조사 이후 문제가 발생한 기관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추가 점검에 나선 뒤 사안에 따라 감사원과 검찰에 조사와 수사를 의뢰한다. 검찰은 이 업무를 대검 반부패수사부에 전담시켰다. 정부는 특히 이 과정에서 인사 관련 서류를 없애거나 수정한 경우, 1차 조사 주체인 주무부처가 봐주기식 조사를 한 경우는 채용비리와 똑같은 수준의 책임을 묻기로 했다.
비리가 확인된 관련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로 징계한다. 채용비리 가담자는 바로 업무에서 배제된 뒤 해임 등 중징계가 이뤄진다. 비리로 채용된 직원은 퇴출시키고 인사를 청탁한 사람의 실명과 신분을 공개하기로 했다. 비리 관련 개인과 기관은 성과급도 토해내야 한다.
정부는 또 부정채용자를 퇴출하는 등 제재 근거를 명확화하고 기관장과 감사의 연대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과 관련 지침도 정비할 방침이다.
정부 대책의 방향에 이의 제기는 없겠지만 징계 과정을 둘러싼 논란과 다툼의 여지는 클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채용자의 경우 기관장 책임하에 소명이 되는 경우 구제한다는 방침은 세웠지만 이 역시 간단하지 않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이를 인식한 듯 “빠른 시일 내 처리방법을 정하되 일단 퇴출을 원칙으로 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신분 공개 대상을 판가름하는 것도 난제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법은 못 정했다. 징계를 받은 사람이 불복해 오랜 세월에 걸쳐 소송전이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공공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책에는 공감하지만 생각보다 징계 대상과 수준을 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교하고 강력한 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자칫 ‘용두사미’로 끝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