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면 죽는다’는 말이 격언처럼 돼 있는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에서 국내 업체들은 끊임없는 혁신 노력과 함께 경쟁업체와도 손을 잡는 ‘합종연횡’ 전략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특히 ‘트리플A(애플·알파벳·아마존)’가 강점을 갖고 있는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등의 분야에서 ‘개방형 혁신’ 전략을 통해 업계 판도를 바꾼다는 방침이다.
☞ 미래 시장 주도권 열쇠는 AI
삼성, 하만 통해 ‘빅스비’ 강화
네이버, 글로벌 연구기관 인수
SKT ‘누구’ 등 이통사도 가세
◇AI로 미래 시장 주도권 쥔다=국내 ICT 업체들의 최근 성장전략을 살펴보면 ‘AI 강화’로 요약된다. 선봉장은 삼성전자와 네이버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삼성개발자컨퍼런스(SDC)를 통해 AI ‘빅스비’의 2.0 버전을 발표했다. 빅스비2.0은 기존 삼성전자 스마트폰 외에도 TV·냉장고 등 삼성전자의 모든 가전제품에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해 인수한 하만을 통해 자동차에도 빅스비를 탑재한다는 계획이어서 가정과 직장, 출퇴근 시간 등 일상을 빅스비로 묶는 것이 가능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내년에는 AI 스피커도 출시할 예정이다.
네이버의 AI 전략은 인수합병을 통한 선발주자 따라잡기로 요약된다. 실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올 초 글로벌최고투자책임자(GIO) 직책을 맡으며 M&A를 주도하고 있다. 세계적 AI 연구기관인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XRCE)을 올 상반기 인수한데 이어 지난달에는 자율주행차 분야 이노비즈 테크놀로지스에 지분투자를 단행하는 등 글로벌 업체와의 격차를 꾸준히 줄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이 같은 전략은 식료품 업체인 홀푸드, 동영상 플랫폼 업체 트위치 등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운 아마존을 비롯해 안드로이드와 유튜브 등을 흡수해 글로벌 플랫폼으로 키워낸 구글을 연상시킨다. 네이버는 특히 모바일메신저 ‘라인’의 입지가 탄탄한 일본시장에 AI 스피커 ‘웨이브’를 세계 최초로 내놓는 방식으로 한·일 양국에서 AI 최강자로 거듭난다는 방침이다.
이동통신사들도 적극적이다. SK텔레콤은 인공지능 플랫폼 ‘누구’를 통한 통신과 AI 결합 서비스로 ICT 업계 패권 장악에 나서고 있다. 특히 국내 2위 오픈마켓인 11번가를 자회사로 보유한 만큼 아마존과 같은 유통망과 ICT가 결합된 다양한 서비스 출시가 가능할 전망이다. KT는 가입자 30만 명을 넘어선 ‘기가지니’를 중심으로 유무선 통합 AI생태계 구축방안을 꿈꾸고 있으며 LG유플러스 또한 일본 소프트뱅크의 AI 로봇 페퍼를 몇몇 매장에서 시범서비스하고 있으며 조만간 AI스피커도 출시할 예정이다.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은 AI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SK C&C는 AI 플랫폼 ‘에이브릴’을 통해 기업간거래(B2B)용 AI 시장 주도권을 쥐겠다는 계획이며 삼성SDS는 대화형 AI 플랫폼 ‘브리티’를 통해 AI를 기반으로 한 AI플랫폼서비스(AIaaS)를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LG CNS 또한 지난 8월 멀티 클라우드 기반 AI 빅데이터 플랫폼 ‘답(DAP)’을 출시하는 등 SI 업체들 사이에서도 AI는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되고 있다.
☞ 이종 간 손잡고 영토 확장
삼성-카카오 협업 영향력 확대
네이버 AI, LG 제품 탑재 추진
SKT-SM엔터 간 지분투자 제휴
◇이종 간 협업 통해 서비스 확장=국내 ICT 업체의 또 다른 성장 전략은 합종연횡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카카오가 AI와 관련해 손잡은 것이 대표적이다. 카카오아이(i)와 빅스비라는 별도 AI 플랫폼을 가졌지만 모바일 메신저와 가전기기 시장의 영향력이라는 서로의 장점을 결합해 국내를 넘어 해외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네이버와 LG전자 또한 네이버의 AI 플랫폼 ‘클로바’를 LG전자 제품에 탑재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협력을 강화하며 카카오와 삼성전자를 견제하고 있다. 네이버는 또 YG엔터테인먼트에 지분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콘텐츠 부문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에셋대우와의 제휴를 통해 핀테크 부문에도 발을 뻗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7월 SM엔터테인먼트와 서로 간 지분투자방식으로 제휴를 맺어 미래 핵심 성장동력 중 하나인 콘텐츠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KT와 LG유플러스는 국내 2위 규모의 음악서비스 ‘지니뮤직’에 대한 공동 지분투자 를 통해 서비스 범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업체와의 협업도 활발하다. SK C&C는 IBM의 AI 서비스 ‘왓슨’과의 제휴를 통해 AI플랫폼 에이브릴을 내놓았으며 SK텔레콤은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해 BMW와 손을 잡는 등 어느 때보다 합종연횡이 활발하다. 특히 황창규 KT 회장은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대표와 회동을 갖고 자율주행차 부문에 대해 논의하는 등 글로벌 사업자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ICT 업계 관계자는 “AI 분야는 트리플A가 크게 앞서나간 듯 보이지만 지난해 알파고 열풍 이후 관련 시장이 크게 부각된 초기시장이라는 점에서 국내 업체들 또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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