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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은행 파벌 싸움<상>] 계파갈등에 은행 인사때마다 투서 빗발...행장에 공개 항명까지

임금·승진도 출신따라 차이...노조, CEO 교체때마다 흔들기

계속되는 내부 갈등에 낙하산까지 겹쳐 지배구조 되레 퇴보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특혜채용 논란에 사퇴 의사를 밝힌 2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로 우리은행 본점 로비에 이 은행장의 동영상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2일 전격 퇴임을 발표하자 시중은행 출신의 한 고위관계자는 “처음부터 대등합병이란 게 없었다”며 한탄했다. 특혜채용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라는 내부 계파 갈등이 결국 안정적인 민영화로 자리 잡던 조직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1998년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한빛은행이 이름을 바꿔 지금에 이르렀다. 흡수합병이 아닌 대등합병이다 보니 통합 후에도 자리나 지분을 두고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행장 인선은 물론 인사 때마다 출신 은행을 고려하는 것이 불문율일 정도다.

이 행장 역시 임원 구성과 승진에서 한일·상업 동수 구성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켰다. 지난 1월 인사에서도 본점 임원 중 상업은행 13명, 한일은행 11명, 외부 1명 등으로 비율을 맞췄다. 인위적인 안배로 가다 보니 오히려 능력 위주의 인사가 되지 못하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그 결과 내부 회의에서 행장에 대한 공개적인 항명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이 IMF 이후 흡수합병을 해오면서 KB국민은행은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우리은행은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KEB하나은행은 외환은행과 하나은행 식으로 갈등의 골이 깊다. 기존 집단 고유문화를 지키려다 보니 결합 후 융합되지 못한 채 주요 보직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만 가득한 까닭이다. 특정 시기마다 투서가 끊이지 않을 정도다.



김영재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인적인 경쟁이 아니라 집단적인 경쟁이 발생하다 보니 충돌이 표면화됐을 때 최고경영자(CEO)가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며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여 신뢰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특혜채용은 상업은행 출신인 이광구 행장 체제에 불만을 품은 한일은행 출신의 퇴직자가 국회의원실에 제보해 처음 밝혀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속속들이 사정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내부고발이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사건 이후 줄줄이 옷을 벗게 된 이 행장, N 부문장, L 상무 모두 공교롭게도 상업은행 출신이다. 이로 인해 금융권에서는 이순우 행장에 이어 연속으로 상업은행 출신이 행장에 올라서면서 차기 행장을 노리는 의도로 해석한다.



KEB하나은행은 2015년 통합된 후 여전히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임금·승진도 어느 은행 출신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정도로 화학적 통합이 늦어지고 있다. 하나은행은 행원-대리-과장-차장-관리자 순이며 외환은행은 계장-대리-과장-차장대우-차장-부점장 순이다. 임원 인사에서는 외환은행 출신이 상대적으로 위축돼왔다. KEB하나은행의 전무 이상 임원 20명 가운데 외환 출신은 5명에 불과하다. 부행장 가운데서는 1명에 그친다. 당초 이러한 점을 감안해 외환은행 출신 임원에게 그룹 인사총괄(CHRO) 겸 은행 HR본부를 맡겼으나 최근 노조의 요구로 기존 영업지원그룹장인 하나은행 출신 임원으로 교체했다. 심지어 노조위원장도 김정한(하나은행 출신), 이진용(외환은행 출신) 등 두 명이다. 회장 연임에 대한 입장도 출신별로 다르다는 얘기까지 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그간 비주류 계파로 꼽혔던 3채널인 장기신용은행 출신의 허인 부행장이 행장으로 내정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지금까지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출신 간 자리를 안배해왔기 때문이다. 장기신용은행은 1998년 KB국민은행에 인수됐다.

KB국민은행 내에서는 옛 KB국민은행 출신을 ‘1채널’, 2001년 합병한 주택은행 출신을 ‘2채널’로 부른다. 승진 시 1·2채널을 안배하지 않으면 직원들의 반발을 부르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중립적인 행장 인사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처럼 계파싸움이 벌어지고 인사를 놓고 잡음이 발생하면서 조직 발전과 미래는 어둡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관치금융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외부 낙하산 인사에 시달려왔는데 지배구조 안정은커녕 경쟁력을 좀먹는 게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배구조 이슈는 CEO 교체기마다 나오고 노조는 이를 이용해 흔들기에 나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합병 은행 출신 직원들이 모두 퇴직하고 합병 이후 신입 행원으로 들어온 직원들이 중간간부가 될 때까지 10년 이상 걸려야 이런 상황이 없어질 것 같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시중은행들이 여러 은행 간 인수합병이라는 태생적인 취약점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 교수는 “출신들에 대해 결국 CEO가 탕평책을 써야 하는데 제도화하는 건 쉽지 않다”면서 “인사제도의 공평성·투명성을 구축하고 인사 관행도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정원·이주원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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