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학회의 태두인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는 외환위기의 산 증인이다. 박 교수는 금융연구원장 시절이던 1997년 3월, 강경식 경제부총리에게 시장환율 도입을 건의하면서 “한국이 제2의 멕시코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8개월 뒤 한국은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서도 박 교수는 중책을 맡았다.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짙어진 1997년 11월20일, 스탠리 피셔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는 한국을 찾는다.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극비리에 방한(11월16일)한 지 4일 만이었다. 블룸버그가 “한국의 가용 외환 보유액이 20억달러에 불과하다”고 보도(11월5일)할 정도로 당시 한국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고 IMF와 우리 정부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방한한 피셔 수석부총재의 행보는 오리무중이었다. 하지만 피셔 수석부총재가 박영철 교수(당시 금융연구원장)과 만난다는 사실을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의 안테나에 포착됐고 본지 기자(김영기·신경립)는 힐튼호텔(1911호실)에서 기다리다 박 원장과 피셔 수석부총재의 사전협의 내용까지 확인했다. 협상을 마치고 나오는 박 원장을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붙들자(왼쪽) 그는 얼굴을 가리면서 그곳을 빠져 나갔고 다음날 우리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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