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찾은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첨단측정장비연구소는 여러 타입의 광전자 융합현미경(가시광선 광학현미경과 전자빔 전자현미경의 결합)을 작동하거나 부품을 조립하는 데 한창이었다. 재료와 바이오물질 연구, 반도체 검사 등에 쓰이는 첨단 현미경을 미국·일본·독일제가 장악한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국산화에 나선 현장이다.
조복래 KRISS 책임연구원은 “해외 측정장비 회사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데 우리 광학기술이 외국에 종속되다시피 한 것이 아쉬웠다”며 “KRISS의 광학·전자현미경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대당 2억~4억원에 달하는 외국산과 비교해 성능은 비슷하면서도 가격은 절반으로 낮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광학 이미지와 스펙트럼을 얻는 기능도 추가로 1억원의 옵션이 드는데 기본형으로 제공해 편의성을 높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원 창업기업인 모듈싸이의 대주주인 조 책임연구원은 내년 중순 제품을 상용화해 수입대체와 함께 오는 2019년부터 선진국으로의 수출도 본격화할 방침이라고 귀띔했다.
첨단측정장비연구소는 광전자융합장비팀 외에도 장비인프라지원팀·극저자장측정팀·반도체측정장비팀·우주광학팀·환경측정장비팀을 운영하며 반도체와 헬스케어·자율주행차·우주항공 등의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양자기술 개발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국내 관련 연구의 중심지인 KRISS 양자기술연구소도 찾았다. 이곳에서는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지능정보 기술을 더욱 촉진시킬 양자기술 연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양자기술은 슈퍼컴퓨터보다 빅데이터를 훨씬 잘 처리하는데다 AI를 완성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고 해킹과 도청·감청을 원천 차단해 쓰임새가 무궁무진하지만 상용화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조그만 외부 영향에도 양자결맞음이 쉽게 깨져 온도·전기잡음·자기장 등에 대한 정밀제어가 필수적이다. KRISS는 지난해 초부터 국가보안기술연구소 등과 함께 양자정보 보안기술 융합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연욱 연구원은 “KRISS는 근본 물리량을 양자역학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도로 측정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질량(와트 저울), 광도(양자 칸델라), 시간(광격자 시계), 양자컴퓨터, 양자정보, 스핀소자, 양자이론 등 다양한 분야를 심층 연구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KRISS는 길이·시간·질량 등의 새 측정기술을 개발하고 국가측정표준을 확립하고 있다. 세계 5~6위권의 측정표준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초 취임한 박상열 KRISS 원장은 양자기술연구소와 첨단측정장비연구소를 출범시켜 핵심 역량을 키우기로 했다. 국가참조표준센터와 의료 빅데이터 신뢰성 구축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양자기술도 주도적으로 개발할 방침이다.
박 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수조~수십조개의 사물인터넷(IoT) 센서가 세계 곳곳에 설치될 것에 대비해 중장기적으로 원격교정이나 자동교정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RISS는 IoT 센서에 안정적으로 표준시각 동기화를 제공하는 장파방송을 구축하고 있고 빅데이터 신뢰성 확보를 위한 측정표준과 데이터 간 연계를 추진해왔다.
‘혁신성장’에 동참하는 측면에서도 △기술홈닥터(연구원이 기술 멘토링) △측정클럽(질량·힘·압력·온습도 등 25개 분야 6,000명이 산업체 지원) △히든챔피언(강소기업과 공동연구비 투입해 기술개발) △창업공작소(스타트업 지원)도 한다. 조성재 KRISS 부원장은 “기후변화 대응, 공기질 모니터링, 방사능 오염 감시를 위한 측정장비와 시약, 표준물질, 시험분석 인증 등 사회문제 해결과 신산업 융합연구에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대덕연구단지=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