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담벼락이 무너지고 원룸 건물의 기둥이 나무젓가락처럼 부서질 충격의 지진이 경북 지역을 강타했지만 산업시설들은 굳건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설비가 지난해 경주지진(5.9)을 버텨낼 수준의 내진 설계를 적용하고 있어 안전 기준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부분의 대형 생산설비들이 진도 6.0 이상의 내진 설계를 적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경주 지진(5.9)과 포항 지진(5.4)에도 가스 폭발이나 크레인 붕괴 등의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도 업체들이 이 같은 내진 설계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지진·화산재해대책법’은 국내 발전소와 항만 및 댐, 산업시설 등의 주요 시설을 내진 설계 대상으로 지정해 지진에 건축물과 생산설비가 버틸 수 있게 강제하고 있다.
이번 포항 지진의 진원지와 가까운 국내 최대 철강 업체인 포스코의 경우 고로가 7.0의 지진에도 버티게 내진 설계됐다. 포스코의 대형 고로는 한 번에 담고 있는 쇳물만 250톤에 달한다. 대규모 지진으로 고로가 붕괴되는 상황이 오면 대형 인명 사고는 물론 수 조원에 달하는 설비가 무용지물이 된다. 지진은 진도가 0.2 커질 때마다 에너지가 2배 증가한다. 진도 1 차이가 나면 32배다. 포스코의 고로는 포항지진(5.4)보다 256배(약 1.5) 센 지진이 와도 견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진앙지인 포항과 가까운 울산에 위치한 S-OIL 정유공장은 진도 7.0 규모의 지진에도 견디게 내진 설계가 돼 있다. 이번 포항 지진에도 내부에서는 약 5초간의 흔들림이 있었을 뿐 공장 설비가 훼손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특히 정유화학 공장은 모든 처리 과정이 자동화돼 있는데 이를 제어하는 중앙 조정실은 이중·삼중의 보호 장치가 설치돼 있다. 중앙 조정실은 벙커와 같이 지진은 물론 대규모 폭발에도 영향이 없도록 설계됐으며 유독가스가 내부로 침입하지 못하게 양압 상태를 유지해 놓았다.
이중·삼중의 내진 설계에도 안심할 수 없는 부분은 남아 있다. 일부 생산시설을 제외하면 대부분 진도 6.0 이상의 내진 설계를 적용해놓은 탓이다. 포스코도 고로를 제외한 생산시설은 대부분 6.0 수준의 지진을 버티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지난해 경주지진의 2배(규모 0.2 이상) 강도의 지진이 오면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의미다. 국내 조선소에 서 있는 골리앗 크레인도 대부분 6.0 수준의 내진 설계를 하고 있다. 경주와 포항 지진에는 안심했지만 울산과 거제 등이 진원지가 돼 6.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크레인이 붕괴 또는 넘어지는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형 컨테이너선에 화물을 싣는 국내 주요 항만의 갠트리크레인도 6.0 이상의 지진에 버티도록 설계돼 있어 보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규모 생산설비가 있는 삼성전자 수원 반도체 공장과 LG디스플레이 파주 공장도 6.0 이상으로 내진 설계가 돼 있지만 완전히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LG화학의 여수 공장 역시 내진 설계 기준은 6.0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규모 생산시설이 지어질 당시에는 지진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았고 필요(6.0) 이상으로 내진 설계에 투자하지 않았다”며 “연이어 터지는 대규모 지진을 감안해 대형 업체는 물론 노후 산업단지 내 소규모 업체들도 내진 설계를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구경우·박성호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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