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STX조선과 성동조선의 퇴출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년 초까지 미루기로 했다. 또 구조조정 시 산업적 측면과 일자리,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따지고 주요 산업에 대한 사전 점검을 실시해 선제적 구조조정을 시행한다.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의도지만 되레 수술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기업 구조조정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김 경제부총리는 “일부 중견 조선사(STX·성동조선)는 산업적 측면에 대한 외부 컨설팅을 거쳐 처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기재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 1~2월께 STX와 성동에 대한 처리 방안을 결정한다. 삼성중공업과 현대·대우조선해양 같은 ‘빅3’ 재편 방안도 내년 중 수면 위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올해 중에 사전점검을 실시할 1차 대상 업종을 선정한다. 또 내년 상반기 중 1조원 규모의 구조조정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정부의 이번 발표를 두고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는 구조조정 시 △고용과 지역 경제 등 국민 경제에 영향이 큰 경우 △산업 전반의 구조적 불황 △국가전략사업 등은 산업적 측면을 반영하기로 했다. 이는 실사 결과 구조조정이나 빅딜이 필요해도 문제 회사를 계속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구조조정의 충격 완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할 때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전문가도 참여시키기로 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제1과제인 일자리 문제가 구조조정의 최우선 가치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구조조정을 통한 일자리 감소는 소득주도성장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일자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업은 퇴출시키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6월에 치러질 지방자치단체선거를 의식해 지방의 여론을 달래기 위한 판단이 고려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새 방침에 구조조정이 산으로 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구조조정은 타이밍이 생명인데 고려 대상과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들을 하나씩 설득하고 공통의견을 모으려다가는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 실제 사전 구조조정을 위한 산업진단만 해도 유관부처(기획재정부·산업부처·금융위), 연구기관(산업연구원·한국개발연구원), 관련 기관(금융감독원·산업은행 등)의 협의를 통해 산업진단이 필요한 주요 업종을 선정하고 정기 점검을 한다. 사전 진단만 해도 협의를 해야 할 곳이 7곳이 넘는다.
무엇보다 지역 여론을 감안하게 되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왕좌왕할 가능성이 높다. 청산가치가 높다는 결정에도 여론몰이에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는 탓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청산가치·존속가치와 자금조달 가능성을 따져 금융 측면에서 처리하는 것이 맞다”며 “산업 측면을 고려한 구조조정은 결국 웬만한 기업은 지원해서 살리겠다는 얘기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내년 상반기에 조성하겠다는 1조원 규모의 구조조정펀드도 새로울 게 없다는 평가다. 4월 관련 계획을 발표한 바 있는데다 지금까지 구조조정펀드에 대한 논의가 수차례 있었지만 활성화되지 못했다. 1조원이라는 규모도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말 현재 성동조선의 원화장기차입금 잔액만 2조5,842억원에 달한다.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금융 당국 주도의 구조조정이 일부 독단적이고 산업적 측면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지만 속도가 생명인 구조조정에서는 장점도 있다”며 “구조조정펀드를 통한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는 점은 이미 입증된 부분이며 모든 조건과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고 설득하다가는 될 일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원에 구조조정의 방점을 두겠다는 의도는 아니며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해관계자와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게 객관적 근거를 확보하자는 취지”라며 “부실기업을 살리는 방향으로 정해지더라도 구조조정펀드를 활용해 민간 중심으로 진행하도록 해 과거와 같은 혈세 낭비 논란을 불식시킬 것”이라고 해명했다. /세종=김영필·서민준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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