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은 DS부문장 시절 자신을 ‘최고건강책임자(CHO)’로 지칭했다고 한다. 환경 안전과 협력사 상생 등에서도 최고가 되자는 비전을 항상 강조했기 때문이라는 게 삼성전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의 신념은 신임 DS부문장인 김기남 사장에게도 이어졌다. 김 사장 역시 ‘환경 안전이 경영의 제1원칙’이라는 말을 수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환경 안전에 완벽을 기해야 한다는 삼성전자의 의지가 협력사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환경 안전 개선은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투자라는 데 공감한 업체들이 늘면서 자발적 개선 노력이 급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지난 2015년부터 본격화한 ‘환경 건강 안전(EHS)’ 모델화 사업의 우수 협력사도 17개로 확대됐다.
EHS 모델화 사업은 삼성전자가 환경 안전 기술 및 노하우를 지원하고 협력사가 자체 비용으로 개선 작업을 벌이는 것이다. 17개로 늘어난 ‘EHS 모델’ 업체들은 정기협의체를 만들고 경쟁사 견학까지 서로 허용할 정도로 관계를 다졌다. ‘환경 안전에는 비밀이 없다’는 가치를 향후 늘어날 EHS 모델 업체들과 공유하며 협력사들의 상향 평준화를 이룰 계획이다.
14일 대전 대덕구 산업단지에 위치한 반도체용 화학물질 제조업체 ‘디엔에프’를 찾았다. EHS 모델인 이 업체는 3월부터 삼성전자와 머리를 맞대고 △3無(화재·누출·냄새) △3정(정 위치, 정품, 정량) 5S(정리·정돈·청소·청결·습관화) 등을 추진해 안전하고 쾌적한 사업장을 만들어왔다. 김재웅 디엔에프 환경안전부장은 “대대적 환경 안전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는데 각 분야의 10년 차 이상 팀장들을 TF 팀원으로 배치할 정도로 무게감이 실렸다”며 “TF 리더를 자처한 회사 대표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명운 디엔에프 대표의 의지가 남달랐던 것은 2014년에 회사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사고 때문이었다. 당시 화학물질 제조 후 찌꺼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유증기(공기 중에 분포된 기름방울)가 폭발했고 2명의 직원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의 충격과 두려움으로 일부 직원은 퇴사했다. 김 대표는 “화학 전문가인 만큼 안전에 자신이 있었음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사고가 났다”며 “사고가 나면 직원과 회사를 한순간에 잃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환경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와 직원들의 의지, 그리고 삼성전자 지원으로 디엔에프는 놀라운 수준으로 탈바꿈했다. 통합관제실을 신설해 화재 발생이나 화학물질 누출 여부를 실시간 파악하는 게 대표적이다. 공장 내부에는 누구나 매뉴얼 대로만 하면 주요 안전 사항을 점검할 수 있는 ‘동선’ ‘확인 사항’ ‘담당자’ 등을 명시했다. 결과적으로 디엔에프 직원과 삼성전자가 선정한 중점과제(화재·누출·냄새) 92건은 100% 실현됐고 기본과제 1,183건 중 99.8%에 달하는 1,181건이 개선됐다.
디엔에프 등 협력사 환경 안전 개선에 참여한 김행일 삼성전자 글로벌 EHS 센터장 전무는 “환경 안전 개선으로 생산성·수율 향상까지도 이뤄낼 수 있다”며 “안전한 일터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내년에도 EHS 모델 발굴에 나서며 우수 사례 교류를 확대할 방침이다.
/대전=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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