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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어떻게 한국 철강을 초토화했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결국 무역확장법 232조 카드를 꺼낼 모양입니다. 업계에선 안보를 빌미로 초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이 조항을 두고 저승사자라고 표현합니다. 재작년부터 한국 철강업체를 코너로 몰아왔던 미국이 게임을 끝낼 마지막 펀치를 준비하는 모양새입니다.

미국발 통상 공세를 눈여겨보던 업계 전문가들은 예견된 참사라고 입을 모읍니다. 이전부터 한국 철강을 눈엣가시처럼 여겨온 미국은 어떻게든 미국 땅에서 한국 물량을 몰아낼 궁리만 해왔습니다. 미국은 중국산 저가 철강재를 몰아냈더니 그 빈자리를 한국이 채우고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수백%대 관세를 연이어 맞은 중국은 대미 수출량이 2011년보다 31% 줄어 지난해 수출국 중 10권 밖으로 밀려났지만, 같은 기간 한국은 42% 늘어 3위로 치고 올라왔다는 거죠.

이 때문에 미국은 일찌감치 한국 철강 전반을 겨냥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치밀하게 꿰어왔습니다. 첫 타깃은 포스코가 만든 열연강판이었습니다. 독기를 품은 미국은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자 불리한 가용정보조항(AFA)을 꺼내 들었죠. AFA는 미 정부가 요구하는 자료를 최선을 다해 제출하지 않을 경우 정부 보조금을 받은 기업에나 매길 수 있던 상계관세를 자의적으로 부과할 수 있게 한 조치입니다. 상무부는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가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뒤, 지난 2016년 9월 포스코의 자료 제출이 미비했다며 열연강판에 57%라는 고율의 상계관세를 부과했습니다.

‘러스트벨트(철강·자동차 업체가 밀집해있는 미국의 제조업지대)’의 부활을 내걸고 당선된 트럼프 정부는 앞선 정부가 뿌려놓은 씨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꼬투리를 잡은 미국은 본격적으로 한국 철강을 두들기고 나섭니다. 문제가 된 포스코산 열연강판을 빌미 삼아 한국 철강시장 전체를 흔들기 시작한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속내는 지난해 4월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대한 반덤핑 판정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상무부는 유정용 강관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포스코의 열연강판을 다시 걸고넘어졌습니다. 정부 보조금을 받는 등의 ‘문제 투성이’인 포스코 열연강판이 유통되는 한국 철강 시장의 가격이 완전히 왜곡됐다는 논리를 편 것이죠.



이뿐만 아닙니다. 미 상무부는 지난 1월에도 현대제철 송유관에 부과했던 6.23%의 반덤핑관세를 19.42%로 상향하는 연례재심 예비 판정을 내렸습니다. 송유관을 만드는 데 포스코 제품을 사용했다는 똑같은 논리를 들고 나옵니다. 거듭된 통상제재를 통해 미국은 한국산 철강재 중 약 80%에 관세를 부과하는 데 ‘성공’합니다.

분이 아직 덜 풀렸을까요. 미국은 결국 초고강도 제재인 무역확장법 232조 카드를 테이블 위로 올렸습니다. 앞선 통상제재가 개별 품목을 대상으로 하는 ‘저격’이라면 232조는 해당국의 모든 철강재를 일괄 제재할 수 있는 ‘융단폭격’입니다.

상무부가 제안한 방안은 3가지입니다. 철강의 경우 △브라질·중국·코스타리카·이집트·인도·말레이시아·한국·러시아·남아공·태국·터키·베트남 등 12개 국가에 대해 53%의 관세를 적용하거나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24%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국가별 대미 철강 수출액을 지난해의 63%로 제한하는 방안을 각각 제시했습니다. 일률적인 관세나 쿼터의 경우 다른 수출국과 비슷한 조건에서 경쟁하게 되지만, 한국을 포함한 12개 국가에 53%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채택되면 다른 경쟁국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수출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더군다나 미 상무부가 제안한 방안은 이미 적용 중인 관세에 추가로 부과하는 것입니다.

아직 게임이 끝난 건 아닙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 상무부 제안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판도를 뒤집긴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입니다. 기존 무역 규제와 달리 232조는 국제기구를 통해 시비를 가리기도 마땅치 않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은 가맹국이 안보를 이유로 수입 제한하는 조치를 예외 조항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차근차근 한국 수출길을 죄여오던 미국은 이제 한국 철강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습니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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