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난임으로 고민하는 직원들에게 ‘천국’과도 같다. 체외수정 총 4번과 착상 전 유전진단 검사를 포함해 최대 10만달러(약 1억700만원)의 시술비를 지원한다. 지난 2014년부터는 여성 직원들을 대상으로 건강한 난자를 채취해 얼려서 보관해주는 ‘난자동결’ 프로그램 지원도 시작했다. 미혼인 여성 직원들이 원하는 시기에 냉동난자를 활용해 임신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미국의 불임 관련 시민단체인 ‘퍼틸리티(FERTILITY) IQ’에서 페이스북을 난임 관련 사내 복지가 우수한 회사 중 하나로 선정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난임을 해결하는 과학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페이스북·애플·구글 등 글로벌 기업이 직원들을 위해 제공하는 난임지원 복지정책만 살펴봐도 이 같은 변화를 알 수 있다. 인공수정, 시험관아기 시술에 이어 정자·난자 동결까지 다양하다. 성공률과 윤리성 등의 논란도 있지만 결혼연령이 늦어지면서 난임을 해결하는 기술 발전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는 세계 최초로 시험관아기가 태어난 지 40주년 되는 해다. 세계 첫 시험관아기는 1978년 7월25일 영국에서 태어났다. 시험관아기 시술을 개발한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는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시험관아기 시술은 지금까지도 난임으로 고통받는 부부에게 희망을 준 과학기술로 평가된다. 임신은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만나 수정된 후 난관을 거쳐 자궁내막에 착상하면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정자·난자의 수나 활동량이 적거나 난관이 막혀 있거나 자궁내막에 수정란이 착상하기 어려울 경우 난임이 발생한다.
시험관아기 시술은 여성의 난관이 모두 막혀 있거나 난관 성형수술을 받았음에도 임신에 실패했을 때 실시된다. 난자와 정자를 채취해 체외에서 수정시키고 수정된 배아를 자궁 내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임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수정란을 여러 개 자궁에 이식하다 보니 쌍둥이가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는 1985년 서울대병원에서 첫 시험관아기가 태어났다. 30여년이 흘러 국내에서만도 한해에 7만건가량 시술이 이뤄질 정도로 대중화된 난임치료로 자리 잡았다. 제일병원 관계자는 “시험관아기 시술은 이미 보편화돼 요즘은 착상률을 끌어올리는 방법, 유전병의 대물림을 막는 방법에 초점을 맞춰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험관아기 시술로 임신에 성공할 확률은 병원마다 차이가 있지만 25~45%로 높은 편이다. 전 단계인 인공수정은 10~15% 수준이다. 남성의 정자를 모아 관을 통해 여성의 자궁에 주입한 뒤 자연수정이 일어나도록 하는 시술인 인공수정은 특성상 여성의 난관과 자궁이 임신하기 좋은 조건이어야 한다. 시험관아기 시술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지만 정자의 운동성이 약할 때 주로 이뤄지는 시술로 성공률이 낮은 편이다.
최근에는 아예 젊었을 때 건강한 난자와 정자를 동결하는 방안이 각광 받고 있다. 난자·정자의 문제로 시술을 받아야 임신할 수 있는 상황이 오기 전에 건강한 난자·정자를 영하 195도에 냉동시켜 보관하는 것이다. 김명주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 교수는 “최근에는 사회활동으로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는 경우 혹은 건강할 때 난자를 냉동했다가 차후 임신을 원할 때 사용하기 원하는 경우 난자동결 보존을 주로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애플과 구글 등에서는 여성 직원들에게 냉동난자 서비스를 사내복지로 제공하고 있다.
기존에는 항암 혹은 방사선 치료 등을 받는 암 환자나 남편이 해외에 장기간 거주하는 사람 등을 대상으로 동결을 통한 임신이 이뤄졌다. 실제로 국내에서 2011년 백혈병을 앓은 여성이 냉동 보관한 난자를 해동해 수정시킨 뒤 배아를 이식해 출산에 성공하기도 했다.
난임 극복을 위한 도전에서 우리나라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난자냉동에 쓰이는 ‘유리화 난자동결법’은 차병원이 1998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다. 그동안 천천히 난자를 냉동했다면 유리화 난자동결법은 초급속도로 난자를 냉동시킨다. 세포 손상 없이 난자의 80~90%를 생존시켜 보관하는 것이 특징이다. 차병원은 시험관아기 시술에서도 수정란을 외부에서 6일까지 배양한 후 이식했을 때 산모의 나이와 상관없이 임신 성공률이 높아지는 점을 입증했다. 과거에는 수정란을 3~5일 배양해 이 중 최대 절반만 임신에 성공하는 데 그쳤다.
제일병원은 고환에서 정자를 만들지 못해 사실상 임신이 불가능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고환조직 내 미세한 정자형성 부위에서 정자를 추출해 난자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임신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난임극복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늘 환영의 목소리만 나온 것은 아니다. 냉동난자·정자의 경우 성공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건강한 난자·정자를 냉동해도 자궁과 난소의 상황에 따라 임신이 어려울 수 있다. 차병원 관계자는 “냉동된 난자는 무기한 보관이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활용해 언제든지 임신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자궁과 난소의 노화가 진행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명백한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가운데 병원마다 보관비용도 제각각인 점 등 관리체계가 부실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만 해도 140여개 의료기관에서 동결 서비스를 운영하고 동결비와 보관료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시험관아기 시술이 처음 한국에 도입됐을 당시 종교계를 중심으로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며 반대가 거셌던 것처럼 윤리적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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