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의 통상악재가 동시에 터졌다. 먼저 미국 워싱턴DC에서는 결국 무역전쟁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오후 3시30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명령에 서명했다. 수입 철강에는 25%, 알루미늄에는 10%의 관세를 각각 부과하는 내용이다. 캐나다와 멕시코산만 관세 조치 대상국에서 제외됐을 뿐 한국도 대상에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산업이 외국의 공격적인 무역관행들에 의해 파괴됐다”며 “그것은 정말 우리나라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우리를 나쁘게 대우한 많은 나라가 우리의 동맹이었다”며 아군과 적군의 구분 없는 통상전쟁 의지를 피력했다. 호베르투 아제베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지난 5일 “무역전쟁의 첫 도미노 패가 넘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총력을 쏟아야 한다”고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다.
이익 극대화를 위해 덫은 곳곳에 놓았다. 캐나다·멕시코에 대해서는 30일간 관세를 일시 면제하는 대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진전에 따라 연장을 검토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회유와 협박이다. 각국의 치열한 로비전도 예상됐다. 서명 후 발효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인데 미국은 ‘일시면제’ 카드로 딜을 할 가능성도 높다.
같은 날 일본 주도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칠레에서 출범했다. 탈퇴했던 미국이 “조건만 맞으면 참여할 것”이라고 밝혀 지난해 7월 ‘TPP대책단’을 해체했던 우리 정부를 당혹스럽게 했다. 미국은 CPTPP 복귀로 무역전쟁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서 한국에 뒤진 일본은 미국을 끌어들이면서 단번에 ‘FTA 허브국’으로 자리매김한다. FTA 강국이라 자신했던 우리가 자칫 ‘통상 외톨이’가 될 우려도 있다. 우리 정부가 이날 “연내 CPTPP 가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이유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우리의 가입은 장담할 수 없다. 선택권을 11개국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두 상황을 두고 “정말 혼란스럽고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마땅한 묘수가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오판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흐름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전략과 전술을 짤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도 “미국의 탈퇴서명 5개월 뒤인 지난해 7월 ‘TPP대책단’을 해체했는데 이는 두고두고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보복관세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는 “동맹국인 우리에까지 보복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난해부터 자신했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한미 FTA 개정 압박 역시 “트럼프의 블러핑”이라고 격하했지만 그는 이익을 위해 마음껏 휘젓고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국 이익을 위해 사문화됐던 1962년의 무역확장법 232조까지 꺼냈던 미국이다. 어떤 카드를 또 꺼낼지 모른다”면서 “EU나 중국 등이 보복관세로 맞설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EU는 피넛버터, 오렌지주스, 버번 위스키 등 미국의 대표적 수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문제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는 우리다. 미국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는 중국이 아닌 한국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의 경제정책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로 한국은 11억달러의 피해를 당할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중국은 6억8,900만달러 피해에 그쳤다. 무역전쟁의 화(禍)가 한국을 덮친다는 얘기다. 외환·금융시장에서도 불안심리가 퍼지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경제주체의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줘 주가 하락, 거래량 감소 등 금융시장 쪽에는 구체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 중심으로 해 범정부 차원의 대책기구를 만들면서 국제공조로 맞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될 수 있다”며 “통상외교의 원칙을 천명하고 대통령이 중심이 돼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이날 US스틸은 일리노이주 그래닛시티에 있는 용광로를 재가동하기로 하고 인력 500여명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2015년 가동을 멈춘 용광로에 불을 지핀 것으로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의 온기가 미국에 퍼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fusionc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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