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드디어 기준금리를 올렸습니다. 올해 적어도 3번은 올린다는데 걱정입니다. 미국 경기가 좋다고 하지만 돈을 거둬들이면 현지 소비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이 때문에 회사도 바짝 긴장하고 있어요. 미국이 워낙 큰 시장이라…”
23일 만난 한 전자업체 임원은 “유동성으로 떠받쳐온 호황의 민낯이 드러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TV·세탁기 등 각종 가전을 수출하는 이 회사는 혹여 금리 인상이 미국 현지에서 매출 감소로 이어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는 “미·중 통상분쟁 여파로 비용 부담이 커진 판에 긴축까지 겹쳐 경영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완성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엔저 여파로) 국산 차와 일본 브랜드의 가격 차이가 갈수록 줄어 힘들었다”며 “미국 금리가 올라도 원·달러 환율은 미국의 통상 압박 때문인지 생각만큼 오르지 않아 기업 입장에선 환 부담은 그대로고 미국 현지 판매는 판매대로 까일 판”이라고 염려했다.
조선 등 구조조정이 한창인 업종의 사정은 더 어렵다. 선가가 달러로 산정되는 조선 업종은 지난해 중순 1,100원대를 웃돌던 원·달러 환율이 1,080원대까지 빠지면서 고전 중이었다. 환율 하락으로 같은 선박을 수주해도 앉아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도래한 긴축국면은 빚을 달고 사는 기업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한 조선사 임원은 “요즘 조선업 경기가 살아난다고는 하지만 이제 초입 단계에 불과하다”며 “금융회사들이 여신 관리에 깐깐해지면서 만기 도래한 여신을 연장해야 하는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도 “이른바 공급 과잉 업종에 속한 기업들은 금융권의 대출 회수 움직임에 잔뜩 위축돼 있다”고 말했다.
내수로 충격이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리로서는 한미 간 금리 역전을 장시간 방치 할 수는 없는 탓이다. 국내 경기·물가 등을 고려해 조치를 내리겠지만 조만간 기준 금리 인상 대열에 동참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원화 변동성이 커지면 수출입 물가 변동성이 커지고 부채 문제로 기업 부실도 심각해져 내수 부진이 초래될 수 있다”며 “중소·벤처기업이 덩달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대기업은 긴축 파고에 버틸 여력이 된다. 환 헤지도 못하는 중소기업이 더 문제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돼 정부 지원도 어렵고 수출 시장 다변화도 금방 되지 않는다. 한 중견기업 임원은 “기술력·브랜드·영업력이 떨어질수록 외재 변수에 더 취약하다”며 “기업으로서는 경영 계획 수정 등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중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상 압박이 한창인 가운데 돈줄까지 마르게 된 상황”이라며 “기업으로서는 수출 전략이나 글로벌 공급망을 더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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