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5% 이상 늘어난데다 전기료 등 열처리 비용도 10% 넘게 오르는 등 전반적인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대기업 납품단가는 몇 년째 제자리걸음으로 이 상태로 가다가는 뿌리산업 업체들이 공멸하고 말 것입니다.”(박권태 단조공업협동조합 전무)
고질적인 구인난과 원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뿌리산업 중소기업들이 최저임금과 원부자재 값 인상 등 직격탄을 맞아 존폐마저 흔들리자 대기업에 단가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단조공업협동조합은 2일 성명서를 내고 협력 대기업에 원가상승 요인을 납품대금에 반영해줄 것을 촉구했다. 지역별·소재별로 납품처와 원가 요인이 다른 만큼 우선 회원사별로 협력 대기업에 납품단가 현실화를 요청하고 제안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조합 차원에서 요구사항을 협의해 대대적인 실력행사에 나설 예정이다.
단조조합에 따르면 지난 2013~2017년 단조산업 매출액은 연평균 1% 성장에 그친 반면 영업이익은 5.6%에서 3.9%로 1.7%포인트 떨어졌다. 고정비 부담이 늘면서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4%에서 2.5%로 절반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단조조합 측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은 전년에 비해 2~5%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 전무는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올라버리면 미숙련노동자 임금도 올라가고 숙련노동자들도 임금인상 요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뿌리산업 중소기업들의 목을 조르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만이 아니다. 소재비·열처리비 등 원부자재 값과 제반 비용들도 많이 올랐다. B단조업체 대표는 “소재로 쓰이는 고철 가격이 10% 가까이 올랐다”며 “열처리비 역시 10% 인상을 요구했는데 가까스로 7% 인상으로 합의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경기 남부에 있는 단조업체의 C 대표 역시 “소재비는 한 10% 정도 올랐다고 보고 있다”며 “열처리든 소재업체든 장갑업체든 어쩔 수 없이 오른 값에 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갑·기름·공구비·열처리비 다 올려달라고 한다”며 “이것들은 대기업 대리점에서 들어오는데 이 상태에서 가격이 모두 올라가니 대기업만 이득”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처럼 금형·주물·단조 등 국내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산업이 비용 상승 부담에 악전고투를 하고 있지만 납품단가는 요지부동이다. C 대표는 “대기업에서 제품값을 올려줘야 우리가 산다”며 “우리가 15년 전에 개발하던 제품을 그대로 같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중국 현지업체들이 성장하고 있어 도리어 국내 업체에 납품단가를 낮추라고 요구하는 실정”이라며 “중국 현지 업체들을 보면 가격은 낮은데 품질은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2월 말에는 중소주물 업계가 최저임금 인상분 등을 반영해 납품단가를 올려달라고 촉구하며 공장 가동 중단까지 선언했다. 주물조합 조합원 180여명은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납품단가 인상 결의대회를 열어 “최근 10년간 정부 고시 최저임금 인상률 99.7%, 계절별 차등요금에 의한 전기료 추가 상승분 49.8%를 반영해 납품단가를 인상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달 16일을 시한으로 대기업에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서병문 주물조합 이사장은 “원청업체가 가격경쟁을 시키면 단가를 낮춰서라도 납품하려 하고 전체 물량은 줄고 단가는 낮아지니 적자가 누적돼 폐업 위기에 놓인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라며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았던 우리 회사도 경기가 좋았을 때(2011년)에 비해 매출이 20% 이상 줄어들면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는 주물조합 측의 납품단가 인상 요구를 수용했으며 현대자동차·두산중공업 등 다른 대기업들과 추가 협의를 진행 중이다. 물론 삼성전자·현대차 등 상위 대기업들이 직접 납품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1차-2차-3차 벤더로 이어지는 납품사슬에서 상위 대기업이 납품가 인상의 물꼬를 터줘야 낙수효과가 생긴다는 게 중소업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2017년도 중소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 제조기업의 41.9%가 원청사업자로부터 일감을 위탁받는 하청기업이다. 이들은 매출의 81.4%를 원청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기업 의존이 절대적이다 보니 개별기업 단위에서는 납품단가 인상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뿌리산업은 자동차·기계·조선·가전 등의 제조 과정에서 공정기술로 이용되며 품질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산업이지만 동시에 영업이익률이 5% 미만에 그치는 저부가가치 산업이기도 하다. 지난 2015년 말 기준 총 2만6,000여개의 뿌리기업 가운데 10인 미만 기업이 65.5%에 이를 만큼 영세한 사업장이 많다. 뿌리기업의 97%가 대기업의 2~4차 벤더에 위치하고 있어 원가 인상 요인이 납품단가에 제때 반영되지 않으면 누적된 적자로 도산에 빠질 위험이 어느 업종보다 크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뿌리산업의 경우 하도급 기업의 비중이 높고 대기업 중심의 위탁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며 “제조산업의 전반적인 불황에다 전기료와 인건비 등 제반 비용이 오르는 상황인 만큼 납품단가 현실화를 통해 중소기업의 지불 여력을 확보해야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민정·서민우·심우일기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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