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은 8일 의원 시절 외유성 해외 출장 논란에 대해 “공적인 목적으로 관련 기관의 협조를 얻어 출장을 다녀왔을 뿐 해당 기관에 특혜를 준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출장 주선 공공기관들이 왜 김 원장만을 콕 찍어 초청했는지 등 핵심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을 내놓지 않아 ‘반쪽’ 해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 원장은 이날 비서실 명의의 보도 참고자료를 배포해 그동안 불거진 의혹에 대해 반박하며 이같이 밝혔다. 김 원장은 의원 시절인 지난 2014년부터 3차례에 걸쳐 한국거래소(KRX),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우리은행 등이 부담한 돈으로 우즈베키스탄·미국·벨기에·이탈리아·스위스·중국·인도 등을 방문했다는 외유성 출장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KRX와 KIEP 등 공공기관들이 국회의 여러 정무위원회 의원 중 어째서 김 의원만을 특정해 초빙했는지, 또 현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점검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중국·인도 출장 일정이 2박4일로 타이트하게 진행됐다는 점은 강조하면서도 장장 열흘에 걸친 미국·유럽 출장에 대해서는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업무를 했는지 자료에 일절 나와 있지 않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논란의 핵심은 정무위 의원이 피감기관의 돈으로 외유성 출장을 갔다는 것인데 의혹을 충분히 해소할 만한 설명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정치권과 야권 등에서도 김 원장이 2015년 5월 열흘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DC, 벨기에 브뤼셀, 이탈리아 로마, 스위스 제네바를 돌았던 KIEP 주관 출장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감원은 해명자료를 통해 “KIEP 출장 건의 경우 한국경제연구소(KEI)와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USKI)에 대한 예산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국회가 개선을 요구해왔고 KIEP 또한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고 동의해 현장조사를 하기로 했다”며 “현지 점검 목적을 위해 의전 비서가 아닌 연구기관을 총괄 담당하는 정책 여비서를 동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KIEP가 직접 작성한 출장 보고서와 배치된다. KIEP 직원들은 출장 보고서에 ‘김 의원을 위한 의전 성격의 출장’이라고 써 제출했다. 출장 6개월 전 정무위 예산결산소위에서 KIEP 예산 4억원을 삭감한 김 원장에 대한 로비성 출장이라는 점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국내 금융회사의 한 대관 담당자는 “KEI와 USKI에 대한 점검 목적이라면 워싱턴에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아직 열지도 않은 유럽사무소 신설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유럽 3개국을 추가한 것은 전형적인 ‘끼워넣기’ 출장으로 보인다”며 “KIEP의 당시 유럽 출장 실제 일정표를 보면 외유성 출장이라는 점이 명확히 나올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김 원장이 직접 나서 해명하지 않고 금감원 비서실 명의로 자료를 낸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김 원장의 외유성 출장은 의원 시절에 이뤄진 것으로 금감원 임직원들은 전혀 관련이 없다. 하지만 김 원장이 자신의 과거 행적 해명을 위해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금감원 직원들을 사실상 사적으로 동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김 원장은 최근 의혹에도 불구하고 물러설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날 “금감원장으로서 소임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 역시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 원장에 대한 임명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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