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그룹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요구하는 등 경영권 흔들기에 나서자 정치권과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방어장치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5일 정치권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법무부를 중심으로 대주주의 권한을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에 맞서 제도적으로 경영권 방어장치를 마련하자는 움직임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정치권이다.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촉진하고 경제 활력을 제고할 수 있는 상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포이즌필·황금낙하산·차등의결권제도 도입이다. 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 3% 제한 폐지 규정도 담았다.
또 미국이나 독일에서 이미 명문화됐고 국내 판례에서도 인정하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추가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아울러 주주총회에서 발행주식 총수를 의결 요건으로 삼는 다른 사례가 없다는 점과 섀도보팅 폐지로 기업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해 주주총회 발행주식 총수 의결 요건 폐지 조항도 추가했다.
경제부처에서도 경영권 방어장치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날 경제부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합리적 수준의 견제는 바람직하겠지만 그것이 경영권 위축을 초래할 수준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밝혔다.
“집중투표제 등 엘리엇 요구 견제”
정치권, 경영권 안정논의 급물살
이런 움직임은 최근 엘리엇과 정부의 상법 개정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됐다.
금융투자 업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난 23일 공개한 ‘현대 가속화 제안(Accelerate Hyundai Proposals)’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조항을 삭제하도록 현대모비스(012330)와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의 정관을 변경하라”고 요구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 투표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이에 대해 집중투표제는 세계적으로 도입한 기업이 거의 없어 엘리엇이 현실성 없는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 현대차(005380) 측은 설명했다. 엘리엇은 또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해 지주사로 전환하라’는 내용을 담은 제안서도 내놓았다. 모든 자사주 소각과 순익의 40~50% 배당, 사외이사 3명 추가 선임 등도 요구했다. 4일 현대차그룹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후 숨기고 있던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엘리엇은 겉으로는 지배구조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실제 고배당이나 시세차익을 취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글로비스(086280) 지분이 없어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지배구조 개편안으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한다고 판단되자 현대차 등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을 활용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포석이라는 얘기다. 엘리엇은 2015년 6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고 나섰을 때도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특히 최근 정부가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같이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상황이어서 이 조치가 현실화할 경우 엘리엇의 경영권 흔들기는 실질적인 국내 주요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할 소지가 다분하다.
실질적인 경영권 흔들기로 국내 산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의 경영이 위태로워지거나 이를 무기로 과도한 배당 등 자본유출이 이뤄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이 떠안아야 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에 들여야 할 비용과 시간을 경영권 방어에 낭비하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없다”며 “상법 개정안에 황금낙하산·포이즌필·차등의결권을 포함하는 등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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