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후배) 앞에서 나 망신 주는 게 재밌냐, 너희들이 어떻게 내 마음을 아냐, 힘이 없어서 애들(불량학생)한테 발로 짓밟혀 봤냐.”
드라마 ‘라이브’에서 삼보(이얼 분) 주임은 불량학생들에게 퍽치기를 당한 뒤 해당 사건을 지구대에서 맡아야 한다는 동료들에게 자신이 사건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소리친다. 경찰인 삼보가 어린 학생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촉법소년이 자신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흉폭한 범죄를 태연하게 저지르는 세태를 그려낸 장면이었다.
이를 본 일선 지구대 경찰들은 누구나 한 번쯤 당할 수 있는 일이라며 공감을 표했다. 드라마 ‘라이브’ 노희경 작가의 현장 취재를 돕고 자문을 맡은 윤경호 홍익지구대 2팀장(경감)은 “요즘 청소년들은 체격이 크다 보니 실제로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도 있다”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정선영 홍익지구대 2팀원(경장)도 “비행 청소년 관련 신고를 받고 나가면 ‘짭새(경찰을 비하하는 비속어) 새끼’를 듣는 일은 일상”이라고 덧붙였다.
지구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중심으로 경찰의 애환과 상처를 그려낸 드라마 ‘라이브’는 지난 3월부터 방영되며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으로 케이블TV 드라마라는 한계에도 7%를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한 편의 드라마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의 고충을 이해하는 시민도 많아졌다. 실제로 주취자가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드라마 보니 경찰 고생이 많더라”며 말썽 없이 돌아간 에피소드도 전해졌다.
드라마 ‘라이브’는 경찰들 사이에서도 지구대 현장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 같다는 호평을 듣고 있다. 노 작가가 1년 넘게 홍익지구대 현장을 취재한데다 자문을 담당한 윤 팀장의 23년 현장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경찰들 사이에서 지구대 경찰의 작은 고충도 세부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경장은 “2회를 보면 보급품으로 나온 3단봉을 쭉 빼 사용한 뒤 힘껏 땅바닥에 쳐서 넣는 장면이 있는데 현장과 판박이라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극화된 장면인 줄 알았는데 현실과 똑같은 장면도 있다. 총기 난사범을 잡는 장면에서 오양촌(배성우 분)은 실탄이 장전된 권총으로 범인을 명중시켜 제압한다. 총기 사고가 극히 드문 우리나라에서 민생 현장을 담당하는 지구대 경찰은 공포탄만 소지할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지구대에서 일상적인 순찰을 돌 때도 실탄을 장전한 권총을 들고 다니는지 물어봤다.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윤 팀장은 “공포탄 1발에 나머지는 실탄을 장전해 다닌다”고 당연한 일을 왜 물어보느냐는 듯 답했다.
이참에 궁금증도 하나 해결했다. 한정오(정유미 분)와 염상수(이광수 분)는 테이저건을 들었는데 왜 권총을 들지 않았을까. 정 경장은 “순찰차에 보통 두 명이 타는데 선임이 권총을, 후임이 테이저건을 사용한다”며 “사격 실력이 검증됐고 위급 상황 시 능동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선임에게 권총이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극적인 재미를 위해 현실과 달리 각색된 부분도 있다. 드라마 곳곳에서 나타나는 선후배 간 갈등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두 경찰은 입을 모았다. 정 경장은 “매회 후배가 선배를 못마땅해하고 경쟁심리에 선후배가 다투고 심하면 욕도 하는데 그런 일은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윤 팀장도 “작가에게 아무리 드라마라도 대원이 팀장이나 대장에게 소리치는 것은 너무하다고 말했지만 인물 간 갈등을 부각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와 아쉬웠다”고 전했다. 이어 “실제 현장은 선후배 간에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일상이니 시민들도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드라마 속 장면이 실제 현실과 다르다는 두 경찰의 제보(?)는 이어졌다. 드라마에 묘사된 지구대에는 넓은 휴게실에 운동시설이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홍익지구대에는 운동시설이 없을뿐더러 휴게실은 2평 크기에 불과하다. 또 드라마에는 남성과 여성 경찰 모두 한 탈의실을 쓰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지구대에는 남성과 여성 탈의실이 분리돼 있다. 드라마처럼 근무 시간이 길지도 않다. 윤 팀장은 “드라마를 보면 초과근무가 일상인 것처럼 나오는데 실제로는 정확하게 근무 교대가 이뤄져 생각보다 워라밸이 좋다”고 말했다.
두 경찰은 시민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도 남겼다. 정 경장은 “제복을 벗으면 경찰도 평범한 시민이지만 제복을 입으니까 더 강해지고 맞아도 덜 아픈 것뿐”이라며 “경찰도 일반인과 똑같은 시민이란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팀장은 “술을 먹더라도 가족에게 욕하거나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지 않느냐”고 되물으며 “주취 폭력과 욕설은 제발 자제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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