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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의 뿌리깊은 관료 불신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안져"

■ 저서 '비정상 경제회담'으로 본 尹원장의 생각

기촉법도 "상시화하면 더 큰 해악"

금융위와 별도로 개혁 목소리 낼듯

윤석헌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7일 서울 통의동 금감원 연수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헌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8일 공식 취임하면 문재인 정부 금융혁신의 무게중심이 금융위원회에서 금감원으로 급격히 쏠릴 것으로 전망된다. 개혁의 칼자루를 관료 중심의 금융위가 아니라 윤 원장의 금감원이 쥐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전망의 배경에는 청와대의 이른바 ‘모피아(재무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에 대한 불신이 있다. 모피아로 대변되는 관료들에게 휘둘려서는 제대로 된 금융개혁을 이루기 어렵다는 청와대의 의중이 ‘세 번째 민간 출신 금감원장’으로 귀결됐다는 분석이다. 윤 원장 역시 학자 시절 공사석에서 관료 시스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온 것으로 유명하다.



윤 원장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과 함께 지난 2016년 펴낸 저서인 ‘비정상 경제회담’을 보면 윤 원장의 관료에 대한 강한 불신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경제정책을 구상하면서 읽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원장은 ‘비정상 경제회담’에서 “관료들은 큰 권한을 가지고 특히 정책에 막중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반해 책임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의사결정은 자기들이 해놓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는다”고 지적했다. 한진해운 파산사태와 같이 관료들이 여론에 따라 안이하고 무책임하게 정책적 판단을 내리는 바람에 한진해운 같은 기업을 일구기 위해 수년의 기간과 비용이 다시 들게 됐다는 것이다. 윤 원장은 이어 “(관료들은) 개인적인 출세, 집단 이기주의 또는 관료 시스템 자체를 옹호하는 노력 등이 강화되면서 한마디로 국가가 아닌 사적인 이득을 위해 행동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일단 고시를 패스하면 국민과 분리돼 국민의 언어가 아닌 자기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일종의 분파를 형성해 자기들끼리의 논리구조 속에서 산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 원장은 “많은 나라가 관료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집단 이기주의가 강하고 고시로 완전히 차단해놓고 건너오는 놈은 자기편, 건너오지 못하는 놈은 남의 편이라는 식으로 이분화된 나라는 없을 것”이라며 관료사회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기업 워크아웃의 근거법인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을 두고서도 날 선 목소리를 냈다. 윤 원장은 정부가 기촉법을 관치금융의 통로로 악용하는 상황에서 상시화하면 더 큰 해악이 초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기촉법을 암묵적으로 기업 구조조정에 영향을 미치는 관치금융의 통로로 사용했는데 만약 상시법이 되면 부조리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금융위는 오는 6월 일몰하는 기촉법을 상시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윤 원장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료를 불신하는 윤 원장은 지난해 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금융위의 민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를 이끌며 ‘이건희 차명계좌 과징금 부과(금융실명제 개선)’와 금융회사 노동이사제 도입 등을 권고했다. 관료들이 현장의 혼란 등을 감안해 모두 주저해온 사안들이다. 실제 윤 원장의 권고안 발표 직후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직접 나서 “금융실명제는 국회 논의를 거쳐야 하는 일이고 노동이사제는 노사 합의 등을 거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혁신안 이행에 제동을 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윤 원장이 권고안 발표 이후 관료들의 반발을 지켜보면서 관료에 대한 불신을 더 키웠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윤 원장은 최 위원장이 공식적으로 권고안을 부정하는 의견을 밝힌 데 대해 주변에 섭섭한 심정을 여러 차례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개혁 권고안을 실행해야 하는 주체인 금융위원장이 사실상 비토권을 행사해 혁신안의 힘을 빼놓았다는 것이다.

이건희 차명계좌 과징금 부과 문제는 법제처 해석 등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관철’됐다. 하지만 금융권의 반발이 여전한 노동이사제 도입도 윤 원장이 강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금융권에서는 공직 경험이 전무한 윤 원장이 관료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려는 프레임에 갇힌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그동안 관료 중심의 금융위를 ‘시어머니로 모셨던’ 금감원 내부에서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긍정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를 비롯해 금감원이 금융위 통제에서 벗어나 독자 행동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다”며 “윤 원장이 양 기관의 시스템적 분리를 추구할 경우 제2, 제3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현안에 대한 해석을 놓고 금융위·금감원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어 시장의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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