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포럼의 부대행사로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포럼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 시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이었다. 중국에서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온 주요 기업들의 핵심 경영진이 직접 연사로 나서 일상에 파고든 4차 산업혁명, 시장 공략 마케팅 전략을 소개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은 이미 인공지능(AI)·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등의 최신 기술이 시장에 적용돼 ‘신유통’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 알리페이 등의 모바일 결제는 이미 너무나 흔해져서 베이징·상하이 등 1선 도시에서는 지갑을 들고 다니는 젊은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미국 아마존이 지난해 선보인 무인상점 ‘아마존 고’도 중국에서 이미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신유통 트렌드를 이끌어온 무인상점 기업 졘24의 린졔 최고경영자(CEO)는 “현재까지의 신유통도 빙산의 일각”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면 원가 절감뿐만 아니라 소비자 개개인을 겨냥한 보다 정교한 마케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졘24가 중국에서 선보인 무인 편의점은 손님의 얼굴을 식별한 후 손님의 알리페이 신용도와 멤버십 번호를 즉각 파악하고 손님이 집어든 제품을 인식해 바로 결제해준다. 손님이 지금까지 무엇을 샀는지, 어떤 제품을 사려다 내려놓았는지도 기록에 남는다.
전 세계 260만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한 알리바바 클라우드의 톈펑 고급 총감은 자사의 스마트 시티,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농업 등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솔루션에 대해 설명했다. 예를 들어 스마트 농업 솔루션은 농장에서 매일 몇 마리의 돼지가 태어나고 도축되는지, 돼지마다 건강 상황이 어떤지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심지어 돼지의 성장과 건강 상태에 따라 사료의 양도 조절할 수 있다.
톈 총감은 “한국의 기업들도 알리바바 클라우드를 활용해 중국에 진출할 수 있고 보다 새로운 서비스와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교류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알리바바 클라우드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는 등 한국 시장과의 접점 확대에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반도체·전자·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과 일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는 여전히 한국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AI·빅데이터·IoT·생체인식 등 첨단 기술 분야는 중국이 더 앞서 있다는 것이 산업계의 진단이다. 게다가 규제가 적어 신기술이 시장에 도입되는 속도도 한국보다 훨씬 빠르다. 중국에 진출했거나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이 가장 머리를 싸매는 대목도 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시장을 어떻게 공략하느냐다.
이와 관련, 둥휘즈 비디오자자 창업자는 ‘동영상 광고’를 소개했다. 비디오자자는 AI 기술 등을 활용해 이전보다 업그레이드된 동영상 광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둥 창업자는 “이전까지도 특정 소비자층을 겨냥한 맞춤형 광고 솔루션이 있기는 했지만 20대가 좋아하는 장르라는 이유만으로 공포영화 예고편에 화장품 광고가 등장하는 등 엉뚱한 결과도 적지 않았다”며 “하지만 비디오자자의 AI 기술은 8억명의 중국 인터넷 영상 시청자들과의 전자상거래를 보다 부드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자동차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영화 ‘분노의 질주’ 예고편에 자동차 광고를 삽입하는데 이를 사람이 일일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AI가 자동으로 실행하는 식이다. 둥 대표는 “한국의 화장품·먹거리 등도 이런 방식으로 중국 시장 진출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후즈샹 따메이스샹 총경리는 ‘콘셉트’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따메이스샹은 후난TV의 자회사로 중국의 파워블로거·인플루언서인 ‘왕훙’이나 연예인·유명인사 등을 활용해 ‘KOL(Key Opinion Leader)’ 마케팅을 펼쳐왔다. 후 총경리는 “이미 전 세계 각국의 상품이 중국 시장에 진출해 있기 때문에 중국 소비자들에게 ‘수입산’ 라벨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며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콘텐츠와 KOL·콘셉트를 고민하고 광고처럼 보이지 않도록 마케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최근 한 프랑스산 선크림이 중국에서 완판 행진을 기록한 것도 따메이스샹의 작품이다. 따메이스샹은 왕훙이 야외에서 신나게 노는 인터넷 방송을 택해 선크림을 선보였다. 제품명을 직접 광고하기보다는 선크림 하나만 발라도 괜찮다는 의미로 ‘게을러도 좋은 선크림’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잠시 화면에 비쳤다. 한참을 돌아다녀도 피부색에 변화가 없는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인터넷에서 ‘게을러도 좋은 선크림’을 검색해 기꺼이 결제했다.
한국 인구 수보다도 많은 6,000만 회원을 거느린 온라인 의류 쇼핑몰 한두이서의 두팅궈 대표는 발표 전체를 유창한 한국어로 진행해 청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국 의류·뷰티 상품의 비중도 높은 쇼핑몰인 탓에 아예 직접 한국어를 배웠다는 것이 두 대표의 설명이다.
서울경제신문과 함께 한중 비즈니스포럼을 주최한 최보영 상해씨앤와이 대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인한 양국의 갈등이 해소됐으니까 막연히 사업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가 사드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할 동안 중국 시장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 산업계의 최대 화두이기는 하지만 중국은 이미 4차 산업혁명이 일상에 파고들었다는 이야기다. 최 대표는 “예전처럼 MD에 의존해서 쇼핑몰에 입점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국 소비자에 관한 빅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할지 더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