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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유택 평양과학기술대 총장 "남·북·미 대학 교류로 경협시대 주역 됐으면"

대북제재탓 학교 혼란 겪었지만

북미회담서 화해 큰틀 잡은만큼

9월부터 美교수들 복직 기대

시장경제 이해하는 기술자 양성

북한-국제사회 잇는 교량 될 것

전유택 북한 평양과학기술대 총장이 13일 서울 강남 ‘사랑의 복지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평양과기대 조감도를 가리키며 학교 시설을 설명하고 있다. /송은석기자




“열 살에 월남한 뒤 6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 평양과기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대북제재로 지난해 9월부터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미국 시민권자인 전유택(77·사진) 평양과학기술대 총장은 1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랑의 교회’ 부설 ‘사랑의 복지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6·12 북미 정상회담으로 큰 틀에서 화해의 방향을 잡았으니 다음달 중 평양과기대에 들어가 오는 9월 새 학기를 준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수학 등 자연과학 수준이 높은데 평양과기대가 애초 계획대로 남한과 미국의 여러 대학이나 연구소와 교수·학생이 교류해 ‘4차 산업혁명’의 선도 모델이 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염원한다”고 힘줘 말했다.

전 총장은 지난 1951년 북한과 만주에 대한 핵 폭격설이 무성하던 1·4 후퇴 때 부모님을 따라 월남한 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다국적 석유회사(Gulf·BP)에 근무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수많은 사람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에 관한 소식을 접한 뒤 ‘기독교인으로서 그들을 위해 봉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2003년부터 중국 옌지에 있는 옌볜과학기술대에서 7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다 2010년 9월 첫 수업을 시작한 평양과기대로 옮겼고 지난해 3월부터 총장을 맡고 있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MBA를 마친 그의 부인도 옌볜과기대(영어)에 이어 평양과기대에서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으나 역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교포 중심의 미국 국적 교수들이 교수진의 절반이나 되는데 이들이 빠진 틈을 유럽이나 중국 등에서 메웠지만 필요한 교수진의 70% 정도밖에 안 돼요. 학생들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지 못해 마음이 무겁죠.”

영어로만 수업하는 평양과기대는 2001년 참여정부가 지원한 100만달러와 국내외 교회 등의 후원금으로 평양 대동강 남쪽에서 조성에 들어가 2010년 10월부터 과학기술과 시장경제를 교육해왔다. 북한은 부지를 제공하고 공동 총장·부총장과 교직원들을 파견하고 있다. 컴퓨터전자공대와 국제금융경영대·농생명공대에 이어 치과대학과 의학대학이 문을 열었고 건설공대가 예정돼 있다. 대학원생을 포함해 520여명이 졸업해 이 중 35명이 유럽과 중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550여명의 재학생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 교수진은 미국을 비롯해 유럽·중국·호주·뉴질랜드 등 총 15개국 국적자들인데 지난해 9월부터 미국 국적 교수들의 북한 입국이 금지됐다. 더욱이 교직원 두 명이 지난해 4월부터 북한에 억류됐다가 최근 미국으로 송환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전 총장은 “대북제재의 불똥이 튀며 교수도 부족하고 재정난으로 의대 등의 연구장비도 제대로 확충하지 못하고 있으나 그동안 위챗으로 소통하고 e메일로 교재도 보내주고 옌볜과기대(총장 김진경)나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사장 곽선희 목사) 등의 도움으로 버텨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6·12 북미 정상회담 후 제재가 풀려 9월 학기부터 미국 국적 교수들이 복귀해 학교가 정상화되고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했다.

그는 “적대하던 북미 정상이 처음 만나 마치 이데올로기가 문제 되지 않는 새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며 “영어로 과학기술과 시장경제를 가르치는 평양과기대야말로 그 접점이 될 수 있는 모델”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굉장히 우수해 지금도 각 기관이나 국영기업 등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하는데 이들이 앞으로 경제협력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전 총장은 “한때 ‘평양과기대가 해커를 양성한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으나 이는 ‘낭설일 뿐’이며 오히려 외국 교수에게 수업을 듣고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과학기술자를 양성한다는 긍정적 측면을 봐야 한다”며 “의대 연구장비 도입, 기숙사 증축, 도서관 확장, 체육관 건설 등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평양에 있을 때 학교 구내식당에서 밥을 주지만 아내와 저녁을 해 먹으려고 주 2~3회는 정부에서 허가받고 장사하는 장마당에 갔습니다. 상인만 1,000명이 넘는 통일시장인데 해마다 달걀·옷· 구두·전자제품 등의 품목이 늘며 규모가 커지는 것을 봤어요. 교수들과 단체로 금강산·칠보산· 백두산·개성·판문점·원산·함흥 등도 관광했는데 장마당이 지방 등에서도 활기를 띠는 것을 목격했죠.” 2011년 말 김정은 위원장 체제 이후 주민들의 남쪽 등 바깥세상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고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전 총장은 “‘평화는 값을 지불해야 온다(Peace comes with a Price)’고 강조하는 김진경 총장의 말씀처럼 평양과기대는 국제사회와 북한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할 것”이라며 “북미 정상회담으로 미래로 나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으니 남북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교류를 해 윈윈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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