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가스 수송관 등에 쓰이는 유정용 강관을 만드는 세아제강은 수출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올해 수출이 지난해보다 1,300억원이나 줄어들 전망이기 때문이다. 전체 수출에서 77%(지난해 기준)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서 철강 쿼터제를 시행한 게 결정타가 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미국 수출이 전년대비 반토막에 그쳤지만 이미 쿼터를 다 채워 별도리가 없다”며 “유럽, 동남아 등 다른 지역 공략도 만만찮아 일단 휴스턴 생산라인 증설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세아제강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미국의 노골적인 보호주의에 막혀 공들여 개척했던 최대 시장을 일순간에 잃은 사례다.
사고무친의 상황에 빠진 우리 주력 업종은 철강뿐만 아니다. 자동차는 완연한 긴축 기조가 수출에 치명타가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최근 미국에서 기준 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되면서 현지 할부 금리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미국에서 연내 추가로 두 차례 기준금리 인상이 예정돼 현지 소비 심리는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가뜩이나 엔저로 가격 경쟁력에서 고전한 차에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수 있다.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현대차 쏘나타와 혼다 어코드의 가격 차가 50만~100만원에 불과해 가격 메리트가 사라졌다”며 “긴축 국면으로 원화 변동성이 커지고 구매 심리도 꺾일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시장에서는 이미 우리 주력업종의 수출 엔진이 급속히 식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반도체 하나에 의존한 외끌이 경제구조가 구조조정 부진, 긴축 기조, 파상공세에 가까운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흔들리는 데 따른 것이다. 이는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이른바 좀비 기업 증가에서도 나타난다. 20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선박·자동차 등 13대 수출 주력업종의 한계기업 수는 지난 2015년 370개사에서 지난해 464개사로 늘었다. 2년 새 25.4%가 증가한 셈. 후발업체로 치부했던 중국의 제조업 굴기,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 아베노믹스를 등에 업은 일본의 부활에 눌려 우리 주력산업이 맥을 못 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환익 한경연 실장은 “수출 주력업종 내 한계기업이 증가하면 대외환경이 악화할 경우 즉각적인 수출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의 쏠림 구조를 떠올리면 주력업종의 부진은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은 2015년만 해도 11.9%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게 20.3%(올 5월 기준)까지 커졌다. 국가별 수출 비중도 중국(25%)과 미국(12%)을 합치면 37%(올 1·4분기 기준)에 이른다. 보호무역주의 파고가 반도체 등 우리 중간재 수출을 덮친다고 가정하면 우리 경제 자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 대중 수출에서 중간재 비중은 79%(올 1·4분기 기준)나 된다. 메모리 분야에서 최정점에 있는 반도체만 해도 시장 성장률이 차츰 둔화돼 2020년 -16.2%(가트너 전망치)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가팔랐던 원화 강세가 미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한·미 금리 차 확대(0.5%포인트), 무역분쟁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로 주춤하고 있는 게 그나마 다행으로 꼽힐 정도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구조적으로 한국의 5대 먹거리(반도체·조선·철강·디스플레이·자동차)의 부실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며 “시장 간섭을 최소화하고 새살이 돋아나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환경 조성이 절실하다”고 꼬집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도 “반도체로 버티던 수출엔진이 꺼져가고 있을 만큼 어렵다”며 “정책 당국의 관리 능력이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무엇보다 기업의 의사결정 불확실성이 너무 높아졌다”며 “기업이 느끼는 정책 불확실성을 최소한 줄여줘야 어떻게든 생존을 도모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상훈·고병기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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