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업계에 따르면 SK해운은 최근 LNG선 ‘SK스피카’호를 운항할 수 없다는 방침을 세웠다. 해당 선박은 한국가스공사가 미국에서 들여올 LNG를 운송하기 위해 삼성중공업으로부터 인도받은 선박이다. 가스공사는 이 선박을 가져다 운영할 업체로 SK해운을 지정했다.
SK해운이 운항불가 방침을 세운 것은 LNG선에 탑재된 화물창(LNG를 싣는 탱크)의 품질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SK해운 측은 탱크에서 결빙 현상이 발견돼 운항에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초 운항 예정일이던 지난 4월 SK스피카를 대신해 다른 선박을 긴급 투입했다.
해당 선박에 탑재된 화물창은 제조 관련 기술을 최초로 국산화해 기대를 모았다. LNG 운송을 위해서는 영하 163도의 극저온 상태로 액화한 뒤 밀폐된 탱크에 저장해야 하는데 액화한 LNG가 운송 중 일부 기화하는 만큼 화물창 내벽(멤브레인)은 용접 부위가 터지지 않도록 정밀한 디자인으로 설계돼야 한다. 그동안 국내 조선사는 관련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척당 100억원에 이르는 로열티를 지급하고 프랑스 GTT사에 의존해왔다. 국내 대형 조선 3사가 그동안 인도한 LNG선이 300여척에 달하는 만큼 로열티로만도 3조원이 나간 셈이다. 가스공사와 조선사·중소협력업체까지 나서 관련기술 국산화에 팔을 걷어붙인 이유다. 멤브레인 설계는 가스공사 자회사인 KC, 제작은 국내 유일의 LNG 멤브레인 업체 TMC가 맡고 삼성중공업은 이를 받아 선박을 건조하기로 했다.
하지만 SK해운이 품질 문제로 운항불가를 선언하면서 프로젝트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선박에 문제가 있다고 최종 확인될 경우 SK해운의 대체선박 투입에 따른 비용을 삼성중공업에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중공업은 “SK해운을 제외한 모든 관련 당사자들이 선박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밝히며 합의점을 찾아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제 배상 책임이 발생할 경우 이를 납품업체에 넘길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은 화물창을 납품받아 배에 탑재만 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배상 책임이 발생할 경우 결국 부품을 설계·제조했던 업체가 ‘독박’을 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제는 중소기자재 업체에서 이를 감당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TMC는 이미 납기지연 문제로 수십억원대의 지체 보상금을 물어낼 위기에 처했다. 삼성중공업에 멤브레인을 예정보다 늦게 납품했기 때문이다. 자본금 10억원, 연매출 500억원대의 중소기업인 TMC 입장에서는 이조차 감당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추가 배상금이 발생할 경우 경영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기술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는데 처음 제작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생긴 것”이라면서도 “국산화 프로젝트의 한 축을 맡던 업체가 흔들리면 프로젝트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보·고병기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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