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VIP가 기업을 방문하면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닌 한 총수가 영접하는 게 관례고 예의다. 하지만 삼성은 특수 상황이다. 이 부회장이 이번 정부 출범과 연계된 최순실 국정 농단과 얽혀 최종심이 남아 있다. 특히 정치권·시민단체 등에서 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로 경영활동을 하는 데 대한 쓴소리가 여전하다. 그런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면 정부도 일정 부분 비판을 감수하고 이번 회동을 추진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달리 보면 이번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위한 ‘삼성 역할론’에 그만큼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도 된다.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 총수와의 만남을 빌려 기업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VIP가 인도에 진출한 수많은 기업 중 삼성을, 그것도 집행유예 상태의 이 부회장을 만난다는 게 상징성이 크다”며 “기업을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삼성 때리기’ 전환점 맞나=삼성은 바람 잘 날이 없는 신세다. 최근만 해도 금융위원회가 금융그룹통합감독 시행을 이유로 삼성의 보험계열사에 전자 지분 매각을 압박했고 공정위는 전자·물산 등에 대한 대대적 현장 조사에 들어갔다. 사정 기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쑤시다 보니 삼성맨 사이에서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자조 섞인 넋두리가 나올 지경이다. 그런 만큼 양자 간 만남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일단 총수 대면이 경직된 관계를 좀 누그러뜨리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감지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 입장에서는 현안은 차치하고라도 (정부가) 총수 역할을 인정한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성과로 볼 수 있다”며 “삼성을 압박하고 있는 여러 이슈도 속도 조절이 될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회동으로 JY와 나렌드라 모디 총리 간 남다른 인연도 눈에 띈다. 둘 사이 첫 만남은 지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부회장은 추석 연휴에 인도로 건너가 모디 총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모디 총리가 투자를 당부했고 이 부회장은 공장 증설로 화답했다. 당시 만남이 갤럭시 노트 7 배터리 발화 사태 이후 삼성전자 등기이사 선임을 수락하고 가진 이 부회장의 첫 외부 행보였기에 특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반전의 모멘텀이 필요할 때 효자 노릇을 해준 인도였다.
◇공식 행사 소화로 이전보다 존재감 드러낼까=JY의 외국행은 출소 이후 이번이 네 번째다. 결정적 차이점은 이번 출장이 공식 행사라는 점이다. 삼성은 지난해 491억5,000만루피(한화 8,600억원)를 들여 인도 공장 증설을 발표했는데 이번에 노이다 공장 준공식을 통해 문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시장에서는 이 부회장이 차츰 리더십 색깔을 드러낼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이번에 방문하는 인도의 스마트폰 사업만 해도 빨간불이 켜졌다. 인도에서 최근 6년간 최고 시장점유율을 지켜온 삼성은 지난해 4·4분기 처음으로 중국 샤오미에 1등을 내줬다. 설상가상으로 올 1·4분기 샤오미와의 점유율 격차는 2%포인트에서 6%포인트로 벌어졌다. JY가 위기 초입에 구원 투수로 등판한 격이 됐다. 가전 시장을 놓고 봐도 인도는 ‘마지막 블루오션’으로 통한다. TV의 경우 아직 20~30인치가 주력일 만큼 프리미엄 시장은 아니지만 경제 성장과 함께 폭발적 잠재력을 갖췄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의 스마트폰 점유율이 1%까지 떨어졌고 가전도 하이얼 등의 성장으로 고전하고 있지 않느냐”며 “JY가 인도 공장에 모습을 드러낸 자체만으로 직원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봤다. 이 외에 신사업 마련 등 사업구조 재편뿐만 아니라 지배구조 개편 등 다른 현안도 산적해 있다. 최근 발표된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허용,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 처분 등은 오너 결단이 없으면 힘들다. 재계의 한 임원은 “새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해서도 이 부회장이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며 “다만 최종심이 남아 있는 만큼 경영 최전선에서 움직이기보다는 적재적소의 타이밍에 존재감을 과시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전망했다.
/이상훈·신희철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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