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설비투자가 2·4분기까지 7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이어가며 27년 만에 최장기간 상승세를 기록했다. 최근 4개월 연속 설비투자 증가율 마이너스를 기록한 한국과 대조적이다. 규제 완화와 법인세 인하 등 아베 신조 정권의 친(親) 기업정책과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율 인상 등 문재인 정부의 서로 다른 정책 기조가 양국 간 투자 격차를 벌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내각부는 10일 설비투자 호조에 힘입어 일본의 올 2·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0.5% 증가해 2분기 만에 상승세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설비투자는 전 분기보다 1.3% 늘었고 소비심리가 살아나면서 개인소비도 0.7% 증가했다. 이치카와 유스케 미즈호종합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민간기업의 설비투자는 앞서 일본은행의 단기경제관측조사(단칸)에서 기업들이 밝힌 계획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라며 “앞으로도 설비투자는 견조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일본 주요 대기업의 설비투자는 20% 이상 늘어 1980년 이후 최고치를 찍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정책투자은행 조사에 따르면 올해 일본 대기업의 설비투자 계획은 총 19조7,468억엔으로 전년 대비 21.6% 늘어나며 7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증가폭도 1980년(23.5%) 이후 최고치다. 아사히신문은 “계획이 실제 투자액보다 높다는 점을 고려해도 올해 10%대 증가율은 달성할 것”이라며 “이는 1990년대 이래 최고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한국의 설비투자는 3월부터 6월까지 내리막길을 걸으며 18년 만에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결국 지난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투자확대에 힘입어 14.6%까지 치고 올라갔던 설비투자율은 올해 다시 한자릿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7월 발표한 경제수정 전망에서 설비투자 증가율을 기존 2.9%에서 1.2%로 대폭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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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의 활발한 투자는 아베 정부가 2012년 출범 이후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감세와 규제 완화 등 친기업정책 때문이다. 경기회복에 사활을 건 아베 정부가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규제를 철폐하고 법인세율을 내리며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꾸준히 뒷받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를 ‘생산성 혁명’ 집중투자 기간으로 정하고 임금 인상, 기술 투자 등 조건을 충족한 기업에 대한 법인세 혜택을 대폭 확대해 2015년 30% 수준이었던 실질 법인세율을 20%까지 낮출 계획이다.
아베 정권은 또 출범 이후 각종 규제를 꾸준히 완화해왔다. 2013년에는 규제개혁특별대책으로 ‘국가전략특구 제도’를 도입해 총 10개 지역을 규제특구로 지정, 개발하고 있다. 국가전략특구로 지정된 지역에는 각각 집중육성 산업이 매칭돼 규제가 대폭 완화된다. 가령 국제비즈니스 거점으로 설정된 도쿄 지역은 용적률을 완화하고 인허가 절차를 일원화했으며 의료혁신 거점으로 선택된 오사카 지역에서는 외국 의사와 간호사의 진찰을 허용하고 병상 신설 및 증설에 관한 규제를 완화했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다 보니 일본의 실업률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실업률은 2%대로 사실상 완전고용을 달성했고 일손 부족에 따른 임금 인상은 가계소비 증가를 이끌어내고 있다. 소고 다카히사 노무라증권 연구원은 “올 4~6월의 국내총생산(GDP) 상승을 이끈 또 다른 동력은 개인소비 증가인데 임금이 성장하고 있어 일회성이 아니라고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설비투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기업의 손발이 묶여 있다. 한국의 연간 설비투자 150조여원의 80% 이상은 대기업이 차지한다. 그럼에도 현 정부의 대기업 정책은 규제 일변도였다. 법인세 인상부터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범위 확대, 여기에 내부거래 규제 강화, 상법개정 등이 잇따라 추진됐다. 결국 우리나라 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는 473억달러를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400억달러를 돌파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우리나라 정부는 이제야 친기업정책 전환을 에둘러 선언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내 대기업을 방문해 규제 해소를 약속했고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기업을 위한 산업부가 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기업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급기야 삼성은 8일 향후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왔다는 평가다. 정부부처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고위층 중에는 여전히 규제 완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가득한 사람이 많다”며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접근이 없다면 문재인 정부 내에서도 케케묵은 규제 혁파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민주·박형윤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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