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모터사이클을 타면 죽도록 뜨겁다. 헬멧 속의 머리가 포일로 감싸 장작불 속에 던져넣은 감자처럼 느껴질 정도다. 태양열·도로열뿐 아니라 길 위의 사륜차들이 내뿜는 열기까지 감안해야 한다. 인도에 서서 느끼는 한여름 사륜차의 열기와 전후좌우 사륜차에 갇힌 바이크 라이더가 느끼는 열기는 차원이 다르다. 그 와중에 엔진열 때문에 라이딩 바지 속의 다리는 문자 그대로 벌겋게 익는다.
이렇게 도로 위에서 라이더들이 구워지는 계절에는 계곡 투어가 필수다. 바다보다 인공수영장을 선호하는 사람으로서 계곡 입수가 몇 년 만의 일인지도 까마득했지만 어쨌든 최소한 십여년 만에 처음으로 찾은 계곡은 한여름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37도가 넘는 폭염에도 계곡은 시원하다. 피서객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상류는 심지어 무릎까지만 담가도 춥다. 대부분의 해수욕장과 달리 물도 깨끗하다.
너무 북적이지 않는 곳,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크게 수고를 들일 필요도 없다. 최근 한 달간 찾아간 영월 김삿갓계곡, 가평 어비계곡과 조무락계곡은 언젠가 지나치는 길에 지명만 기억해뒀거나 지도에서 아무렇게나 찍은 장소다. 그저 발만 담그고 와도 좋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물론 이들 계곡에도 불법영업 중인 평상 식당 등이 적잖이 보이기는 하지만 북적이는 구간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한적한 장소가 나오기 마련이다. 특히 모터사이클이라면 사륜차가 지나가기 어려운 좁은 길도 좀 더 쉽게 오갈 수 있기 때문에 탐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 코스를 잘 찍으면 약간의 임도 체험이라는 부록까지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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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캠핑 의자나 돗자리·얼음물 정도만 준비해 가면 된다. 캠핑 의자에 앉아 흐르는 물소리를 듣다 보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동행인 중에 캠핑 매니아가 있다면 최첨단 취사도구나 간이 정수기, 소형 텐트, 해먹 등의 장비를 활용해 좀 더 풍성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물놀이와 휴식, 낮잠 후에는 계곡 근처의 와인딩 코스로 향한다. 김삿갓계곡 근처에는 베틀재가, 어비계곡 쪽에는 유명산·중미산 와인딩 코스가, 조무락계곡 옆에는 도마치재와 화악산로가 달리기 좋다. 계곡에서 한기를 느끼다가도 달린 지 20분이 지나면 다시 더위가 엄습해오지만 이미 해가 기울기 시작한 시점이라 한결 낫다. 모터사이클 계곡 투어는 앞으로 개인적인 연례행사로 자리 잡을 것 같다.
/글·사진=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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