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사업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연구원도 없이, 돈과 기술도 없이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10년 동안 사업을 추진하면서 8억이 넘는 돈을 쏟았지만,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계속 상품을 개발했습니다.”
고희석(72·사진) 헤어프랜드 대표는 26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비록 하이테크 기술이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상품을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쭉 달려왔다”며 “그 결과로 내놓은 전동 헤어염색기 ‘몬드글락’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해 뿌듯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몬드글락은 고 대표가 ‘혼자서도 편하게 염색이 가능한 머리염색기’를 만든다는 집념으로 10년 넘는 시간을 기울여 내놓은 상품이다. 고 대표는 “우연히 친구가 집에서 혼자 염색하는 걸 보는데, 염색약이 흘러내려 불편함을 느끼던 게 눈에 밟혔다”고 개발 동기를 밝혔다.
몬드글락은 참빗과 소형 감속모터를 결합해 만든 헤어염색기다. 본체에 빗살을 끼운 후, 몸통에 달려 있는 버튼을 누른 채로 머리를 빗으면 내부 용기에 담긴 염색제와 산화제가 감속모터의 회전으로 밀려 올라오면서 자동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해주는 방식이다.
핵심은 빗살이다. 전통 참빗처럼 촘촘한 빗살을 역삼각형 형태로 이중으로 설계하고 좌우를 막은 채, 그 사이로 염색약을 분출하도록 함으로써 염색약이 새는 일을 사전에 차단한 게 특징이다. 빗살이 촘촘해 머리를 빗는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뭉칠 걱정도, 두피에 염색약이 묻을 일도 없다. ‘긴머리용’과 ‘짧은머리용’ 빗살을 따로 마련해, 사용자의 두발에 따라 맞춤형 빗질도 가능하다.
염색기 본체도 고 대표의 구슬땀이 들어간 발명품이다. 내부 용기에 염색제와 산화제를 사용자 편의대로 집어넣어 쓸 수 있게 해, 기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편리한 염색이 가능하다. 안엔 감속모터를 차용해 염색약이 올라가는 데도 무리가 없다.
몬드글락이 빛을 보는 데엔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고 대표는 2007년 환갑이 넘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다. 농사, 농협, LPG 충전소 영업 등의 경력을 보유한 그에겐 아무런 자본도, 기술도 없었다. 당연히 개발엔 시행착오가 뒤따랐다. 처음엔 모터 대신 질소를 동력원으로 삼고 안에 내부 용기 대신 파우치팩에 염색약을 탑재했지만, 질소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고 가격도 더 비싸 사업화에 곧바로 성공하진 못했다. 상품을 다시 디자인하는 데엔 2년이란 시간이 더 걸렸다. 고 대표는 “사업자금을 구하려고 땅도 많이 팔고 돈도 많이 빌렸다”며 “힘들었지만 ‘그릇은 오랜 시간을 거쳐야 완성된다’는 생각으로, ‘느림의 미학’을 끝까지 믿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말대로 몬드글락은 ‘대기만성’이었다. 제품을 개발하면서 3건의 특허와 3건의 디자인을 등록했으며, 미국·일본·중국·유럽연합(EU)에도 몬드글락의 트레이드마크인 ‘삼각빗살’의 디자인을 출원했다. 지난 6월엔 ‘2018 우수중소기업마케팅대전’에서 200여곳의 경쟁사를 제치고 최우수상을 받았다. 현재 고 대표는 국내 7개 홈쇼핑업체와 상품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
고 대표가 원하는 건 부자가 되는 것도, 유명세를 타는 것도 아니다. 그는 “성취감을 얻는 것”이 그의 보람이라고 말한다. 고 대표는 “한번은 서울 한 노인정의 할머니들께서 제 상품을 한번 써보시겠다고 달라고 했다. 이후 한 할머니가 제 제품을 쓰시고 나서 ‘염색 속도가 빠른데다가 속머리까지 알차게 염색이 된다’며 매우 만족해하시더라”라며 “제가 개발한 게 비록 하이테크 기술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밝혔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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