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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의 지배구조 대해부 ①삼성]'고르디우스 매듭 풀기'의 난제...핵심은 생명의 전자 지분 처분

가능성 사라진 지주사 전환, 순환출자고리 해소부터 시동

《이 기사는 시그널 8월29일 오전 6시 1분에 게재됐습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전경. /서울경제DB




◇난마처럼 얽힌 삼성 지배구조 개선…생명의 전자 지분 처분 난관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흡사 ‘고르디우스의 매듭 풀기’를 연상시킨다. 지배구조 개편 자체가 오너의 지배력 약화에 따른 경영권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만큼 쉽지 않은 작업인데, 삼성의 경우 법 개정 작업마저 맞물리며 난마처럼 꼬여 있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관련법만 해도 이미 시행 중인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을 비롯해 공정거래법 개정안, 국회에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 내년 7월 도입 예정인 금융계열사 통합 감독 제도(모범규준) 등 하나둘이 아니다. 일례로 지난 5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5억 1,216만여주(1조 4,000억 규모)를 블록 딜로 처분한 것은 바로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가 비금융회사 지분을 10% 넘게 보유하지 못한다’는 금산법을 충족시키기 위한 고육책에 가까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조치는 삼성전자가 자사주 소각 등의 방식으로 주주 환원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보험사가 보유한 전자 지분율이 높아지는 데 따른 선제 대응이었다.

여기에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가치를 취득원가가 아닌 시장 가격으로 계산하도록 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보험사가 계열사 지분을 총자산의 3% 이상 들고 있지 못하도록 한 규제에 따라 총자산의 3%가 넘는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현재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주식 8.3%를 들고 있다. 처분해야 하는 주식이 20조원에 이를 것이란 게 시장의 관측이다. 이 물량을 받아줄 우호적 투자자를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삼성생명의 전자 주식 처분 문제는 삼성전자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배권과 맞물려 있어 섣불리 결행하기 힘들다. 삼성의 오너 경영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라 가능하다.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등으로 이어지는 출자구조를 통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는 대략 30%의 삼성물산 지분으로 대주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시장에 내놓기 어려운 이유는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총수 일가가 지배력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방안으로 삼성물산의 구원 투수론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마저도 힘들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 부회장 중심의 지배력을 잃지 않기 위해선 삼성생명 지분을 삼성물산이 사들여야 하지만, 이 방안은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는 사항이 될 수 있다. 다만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매각해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면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길은 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도 공정거래법에 저촉될 여지가 크다. 우선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으로부터 삼성전자 지분 2%를 사들여 1대 주주로 올라서게 되면 삼성물산은 지주회사로 강제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1대 주주로서 갖고 있는 자회사의 지분 가치가 회사 전체 자산의 50%를 넘으면 지주회사로 전환된다. 현재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은 4.7%인데,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2%를 추가로 사들이면 지분 가치가 삼성물산 자산 총액(약 49조원)의 절반이 넘어 지주사로 전환될 우려가 있다.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자회사 지분을 상장사의 경우 30%, 비상장사는 50%까지 취득해야 한다. 삼성전자 지분 1%를 추가 매입하는 데도 3조원이 드는 상황에서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용케 현재 논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가 안 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당장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팔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하다. 바로 내년 7월 도입 예정인 금융계열사 통합 감독 제도라는 암초가 도사리고 있어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계열사 간 출자는 자본 적정성 평가 때 적격자본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자본 확충에 나서야 한다.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만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금융계열사 통합 감독제도는 모범규준에 불과하다. 정부 입장에서 얼마든지 보험사로 하여금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떨어지는 칼날(보험업법 개정안)을 피해도 곳곳에 지뢰가 매설돼있는 형국이라 삼성으로서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으로 내몰릴 수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가능성 없어진 ‘지주사 전환’

이런 가운데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삼성의 지주사 전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정안에서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대기업은 자회사 의무 지분율을 기존보다 10%포인트 더 끌어올리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주사는 상장사의 경우 30%, 비상장사는 50%까지 지분을 인수해야 한다. 삼성의 지주회사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 20%를 확보하려면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10% 지분을 더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300조원에 달한다. 지분 30%를 보유하려면 단순히 계산해도 90조원의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하다. 시장에서 “삼성의 지주사 전환은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사실 삼성은 그간 지주사 전환 가능성을 부인해 왔다. 최근 2·4분기 실적 발표 후 컨퍼런스 콜에서도 지주사 전환은 없다고 밝혔다. 자금 여력 등을 감안할 때 애초부터 실현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지주사 전환 시나리오가 계속 거론돼 온 것은 역으로 보면 그만큼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묘수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라며 “어찌 됐든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삼성의 지주사 카드는 사실상 원천적으로 사라졌다고 볼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일단 되는 것부터…남은 순환출자 고리 4개 해소부터 시동

삼성으로서는 지배구조와 관련해 실행 가능한 것부터 손을 봐야 한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는 여기에 부합한다. 현재 삼성의 남은 순환 출자 고리는 4개다. 지난 4월 삼성SDI가 보유 중이던 삼성물산 지분 404만2,758만주를 5,599억원에 매각 완료하면서 기존 7개였던 순환출자 고리 중 3개를 없앴다. 사실 삼성SDI의 삼성물산 지분 매각은 정부가 지난 2015년에 있었던 공정위의 결정을 스스로 뒤집으며 비롯됐다. 공정위는 당시 “순환출자 관련 가이드라인이 잘못됐다”며 “삼성물산 주식을 매각하라”고 삼성SDI에 요구했고, 삼성물산 지분 매각은 그 결과였다.

어찌 됐든 남은 순환출자 고리는 ‘삼성물산→생명→화재→물산’, ‘삼성물산→생명→전자→전기→물산’, ‘삼성물산→생명→화재→전자→전기→물산’, ‘삼성물산→전자→전기→물산’ 등 4개다. 삼성화재와 삼성전기가 각각 보유 중인 삼성물산 지분을 매각하면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는 ‘0’이 된다. 재벌개혁 과제로 순환출자 해소를 꼽았던 문재인 정부에 성의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삼성이 순환출자 고리 해소에 조만간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금융지주 전환 가능성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로 전환 가능성도 난관이 많다. 금융지주사의 경우 금융위원회 승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설립신고만 하면 되는 일반지주회사와는 다르다. 이 때문에 삼성은 지난 2016년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과 관련해 금융위에 문의했다. 당시 금융위는 반대했다. “보험사의 자본 감소로 인해 보험가입자의 안정성 하락이 우려된다”는 게 이유였다. 삼성생명을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 분할하는 과정에서 금융 관계사 지분과 현금 등 유가증권을 투자회사로 넘겨야 해 재무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지주사의 금융사 지분 보유를 허용하는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중간금융지주사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은 “삼성을 위한 특혜”라는 반대 여론이 워낙 강해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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