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확대는 필요하지만 쓰는 방법이 잘못됐습니다. 개인 주머니가 아닌 안전망이나 교육체계에 써야 합니다.”(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기초생활권 보장, 생활환경, 보육과 의료 등 사람의 능력 제고에 투자해야 합니다.”(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정부는 내년 복지 분야에 올해보다 12.1% 늘린 162조2,000억원을 배정하는 등 총지출 규모가 470조5,000억원에 달하는 ‘초슈퍼예산’을 편성했다. 실업난 속에 주력산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양극화는 심화하는 형편에서 복지를 강화하고 재정을 활용해 새로운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일은 진보와 보수, 여야를 막론하고 누구나 동의한다. 문제는 얼마나 제대로 잘 쓰고 있는지다. 안타깝게도 지난해와 올해를 놓고 보면 54조원을 투자한 일자리 창출 사업은 고용 쇼크로 귀결됐고 인프라나 생태계 확충보다는 일자리안정자금이나 창업자금 지원, 공공일자리 등 그저 ‘돈풀기’성 정책만 눈에 띄는 모양새다. 지금 당장은 세수 풍년에 힘입어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없지만 효과 없이 지출만 늘리다 보면 재정에 심각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가파른 지출 증가, 나라 살림 비상=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올해와 내년 2년간 복지예산의 연평균 증가율은 11.9%로 박근혜 정부(7.38%)나 이명박 정부(7.56%)를 크게 압도한다. 복지 분야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4.5%로 역대 최대치다. 복지예산을 통해 청년 일자리나 저출산, 소득분배 개선 등 구조적 요인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한 번 늘리면 줄이기 어렵다는 맹점도 존재한다.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의무지출이다. 의무지출은 이미 쓸 곳이 정해져 정부가 쉽게 줄일 수 없다. 주로 복지예산이 포함되는데 의무지출 비중은 내년에 51.4%를 기록한 뒤 오는 2022년에는 51.6%까지 늘어난다. 복지예산이 해마다 급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를 반영하듯 재정지출이 빠르게 증가하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비율은 올해 -1.6%에서 2022년 -2.9%까지 확대된다. 국가채무 역시 내년 741조원(GDP 대비 39.4%)에서 2022년 897조8,000억원(41.6%)으로 불어난다. 이에 대해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바른미래당은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예산심의권을 최대한 활용해 현미경 예산심사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54조원의 일자리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최악의 고용 성적표가 나왔다.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성과가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일자리예산이 다시 반복됐다”며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철저하게 따질 것”이라 주장했다.
◇‘최고의 복지’ 일자리 창출은 난망=건전성을 우려하는 지적에도 정부는 “재정투자가 시급하고 재정수지도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부채비율이 111%(2015년)에 달한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해 보일 수 있다. 문제는 돈이 헤프게 쓰인다는 사실이다. 재정투자가 미래 성장동력의 마중물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산이 과도하게 많은데다 사업들도 촘촘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일자리예산은 22%나 늘렸지만 일시적인 공공일자리 사업이 대거 포함됐고 청년내일채움공제나 일자리안정자금 등 현금을 직접 손에 쥐여주는 예산 일색이라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산업경쟁력을 강화한다며 산업단지에만 집중투자한다”면서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7조원도 자영업자 간 경쟁만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대했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는 “복지예산은 경제와 연관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동력을 살리는 데 써야 한다”며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고 강조했다.
◇“세금, 고기 잡는 법 가르치는 데 써야”=전문가들은 혈세로 마련한 예산을 제대로 쓰려면 고기를 사주기보다는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친다. 단기효과보다는 꾸준하고 장기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데 써야 한다는 뜻이다. 재정지출의 중점을 직접지원보다는 간접지원에 둬야 한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김광두 부의장은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직접지원의 실패 사례를 제시했다. 1993년 구조조정이나 경제체질 강화가 요구됐지만 당시 정부는 내수를 북돋운다며 적극적인 ‘돈풀기’에 나섰고 그 결과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였다. 김 부의장은 “문 대통령의 ‘사람 중심 성장경제’는 사람의 능력 제고를 위한 투자로 설계했다”며 현재의 재정투자 기조를 에둘러 비판했다.
사람에게 재정을 투자하더라도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확장재정이 중소기업이나 창업 지원에 과도하게 배정되며 시장 왜곡을 낳는다는 얘기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재정이 소비자에게 흘러가야 선택을 통해 우수한 생산자가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기업에 돈을 주는 것은 쉽고 빠르지만 그렇게 만든 일자리는 지속성이 약하다”며 “개인을 교육하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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