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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못생길수록 더 사랑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더 못생겨야 사랑 받는 '어글리 프리티' 전성시대

패션, 음식, 광고, 유통까지 유행이 된 '못생김'

소비층 확대돼 당분간 유행은 계속될 전망

지난 5월 스포츠 브랜드 휠라가 공개한 배우 김유정의 화보. 사진 속 김유정은 90년대 유행하던 큰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휠라코리아 공식 SNS




여러분, ‘못 생겨야 뜬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2018년 전 세계는 바야흐로 ‘못난이’들의 전성시대입니다. ‘어글리’가 ‘어글리’하지 않은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치 80, 90년대 브라운관을 뚫고 나온 것만 같은 아저씨 패션이 유행하기도 합니다. 또는 형태도 갖추지 못한 음식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도 펼쳐지고 있는데요. ‘어글리 프리티’라는 조합마저 어색한 단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그 영향력은 여전히 대단합니다.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못생김’에 우리는 왜 열광하게 됐을까요?

△패션계가 먼저 주목한 ‘못생김’, ‘어글리 프리티’

가장 먼저 ‘못생김’에 주목한 분야는 항상 유행에 민감한 패션계였습니다.

시작은 2015년 유행한 ‘놈코어’(normcore) 패션입니다. 평범을 뜻하는 ‘노멀(normal)’과 철저함을 뜻하는 ‘하드코어(hardcore)’의 합성어죠.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스타일이 특징입니다. 이 패션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후로 신봉해 온 ‘황금 비율’의 아성이 무너뜨렸죠. 이후 기능성에 충실한 패션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엘레쎄’가 지난 9월 공개한 2018 F/W 화보. 레트로 감성이 묻어나는 옷을 입고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엘레쎄 공식 인스타그램


최근에는 놈코어에서 더 나아가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스트리트 패션인 ‘고프코어’(Gorpcore, 하이킹이나 등산 시에 가져가는 견과류와 ‘놈코어’의 코어의 합성어. 등산복과 같이 넉넉한 편안함을 자랑하지만 어딘가 촌스럽고 어색한 핏이 특징) 패션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실용적이지만 투박한 아웃도어와 전 세계 패피들의 만남 같은 다소 어색한 조합이 등장한 것도 이때입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홍대와 강남 등에서 전대를 차고 배바지를 한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심지어 고프코어를 선도하는 디자이너인 키코 코스타디노브는 배바지와 전대를 한 채 동묘 앞 시장을 걸어가는 한국 ‘아저씨’를 SNS에 올리며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동묘가 세계 최고의 ‘패션 거리’라고 말이죠.

‘어글리 슈즈’의 인기는 여전히 뜨겁습니다. 2017년 발매된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를 시작으로 많은 브랜드들이 밑창이 두껍고 울퉁불퉁한 디자인을 갖춘 ‘어글리 슈즈’를 내놓고 있습니다. 디올, 구찌 같은 명품 브랜드 뿐 아니라 아디다스, 나이키 같은 스포츠 용품 업체들도 어글리 슈즈의 미래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죠.

특히,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는 없어서 못 파는 상황에 리세일 상품들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상태에서 팔리는 모습까지 연출되고 있습니다.

당분간 어글리 슈즈의 인기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편안한 착용감과 높은 실용성 뿐 아니라 복고 감성까지 품고 있는 어글리 슈즈는 10대에서 시작해 30대까지 고객층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통업계 전반에 걸친 ‘어글리 열풍’

패션계에서 시작된 ‘어글리 프리티’의 본질은 단순히 생김새에 모든 것을 국한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존재의 본질에 주목하고 싶다는 것이죠. 이런 의식은 유통업계에도 고스란히 접목되고 있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죠.

‘못생긴 빵’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서울 마포구 ‘어글리 베이커리’의 빵./사진=어글리 베이커리 인스타그램


서울 마포구 어글리 베이커리는 ‘어글리 프리티’를 실현하고 있는 제과점으로 유명합니다. 제멋대로 생긴 빵이 오히려 거부감보다 식욕을 자극하는 이곳은 오래전부터 망원동 주민들 사이에서는 모르면 간첩으로 불릴 만큼 유명한 곳이었다고 하네요. ‘못생김’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평일에도 줄을 길게 설 만큼 더한 인기를 보이고 있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죠?

전 세계 수많은 매장을 가지고 있는 맥도날드도 ‘어글리 열풍’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음식이 자유분방해진 것은 아닙니다. 주요 고객층인 10대와 20대를 공략하기 위해 좀 더 자유분방한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판매량을 늘려가고 있는 거죠. 줄을 맞춰 쌓인 패티와 빵으로 고객들의 입맛을 돋우려던 과거의 광고와 달리 흩뜨려져 있는 버거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으로 광고 전략을 바꿨습니다. 그야말로 패스트푸드 광고계의 혁신이라고 불릴 만했죠. 미국 경제 뉴스 사이트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따르면 맥도날드는 2016년부터 이 전략을 광고에 적용해왔고 고객들에게 새로운 매력을 전달했다고 하네요.



지난해 11월 카카오가 이모티콘 출시 6주년을 기념해 공개한 인포그래픽./사진제공=카카오


지난해 1,700만명이 구매한 카카오톡 이모티콘에도 이 흐름이 그대로 적용됐습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지난해 출시 6주년을 기념해 공개한 인포그래픽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이모티콘 TOP 4 중 ‘오늘의 짤’과 ‘대충하는 답장’은 ‘못생김’에 열광하는 이용자들의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모티콘들입니다. 간단한 그림과 짧은 메시지가 번거로움에 지친 이용자들의 필요를 제대로 겨냥했다고 한 셈입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판매가 시작된 2011년 귀엽고 붓 터치가 많은 이모티콘이 유행했지만 최근에는 좀 더 간결한 그림으로 유행이 바뀐 것이죠.

△‘못생겼지만 귀여운’ 과일·채소, 주목받는 ‘B급 농산물’

한해 272만 톤이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죠.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던 농산물의 운명도 ‘어글리 프리티’ 열풍과 함께 달라지고 있습니다. 모양이 일정하고 매끈한 농산물 대신 상품성은 낮지만 맛과 신선도에서 차이가 없고 저마다 특유의 맛과 향, 색을 지닌 못난이 농산물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상품성이 낮은 탓에 가격까지 저렴해 인기는 점점 올라가고 있죠.

‘지구인 컴퍼니’가 판매하고 있는 ‘못생긴 사과즙/사진=지구인 컴퍼니 다음 스토리펀딩 캡처


벌써 프랑스나 영국, 네덜란드, 미국 등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B급 상품’을 판매하는 대형 유통 업체들도 늘고 있고, 관련 농산물을 판매하거나 가공 판매해 성공한 스타트업 기업도 소비자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인터마르셰’, 영국의 ‘웡키베그’가 대표적인 예죠.

아직 한국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파머스 페이스’, ‘지구인컴퍼니’, ‘프레시 어글리’ 등 업체들은 못난이 농산물 전문 쇼핑 플랫폼을 운영하며 농가와 소비자의 연결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파머스 페이스’가 우박 피해 농가를 돕기 위해 우박 맞은 사과를 ‘보조개 사과’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했는데 무려 일주일 동안 10톤가량이나 팔았을 정도로 인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왜 우리는 ‘못생김’에 열광하나?

‘못생김’에 가장 열광하는 세대는 10대부터 30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자기표현의 욕구가 강하며 건강과 식생활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소유보다는 공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멋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경향도 강하죠.

그들과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이 ‘어글리 프리티’입니다. ‘황금 비율’ 등 그동안 사회가 가둬 놓은 틀 때문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에게 큰 울림이 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겉멋에서 벗어나 상품이 가지고 있는 편의성과 기능에 집중한 것이죠.

또 ‘어글리 프리티’는 ‘가치 소비’라는 이 세대의 소비 특성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고 본인의 만족도가 높은 소비재에는 과감히 소비하며 그와 동시에 가격 만족도 등을 꼼꼼히 따져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성향을 뜻하는 가치 소비는 이들의 소비 성향을 설명해주는 가장 적절한 용어죠. 이 세대는 ‘못난이 농산물’과 같은 못생긴 제품에 가치 소비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LG경제연구원은 “B급 제품은 비싸지 않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제조사가 제시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의 상황에 맞고 고쳐 쓰거나 보완해 사용하는 모디슈머(Modisumer, Modify와 Consumer의 합성어로 제조업체가 제공한 조리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재창조한 방법으로 제품을 즐기는 소비자)들에게는 큰 장점이 된다”고 이 현상을 설명했죠.

‘못생긴’ 상품들의 유행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못생긴’ 상품들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밀레니얼 세대를 넘어 다른 세대로까지 확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매층이 확장되면서 패션, 음식, 광고, 유통 등을 총망라한 유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글리 프리티’를 반영한 ‘신상’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판매되고 있는 것은 ‘못생긴’ 제품의 밝은 전망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짜 맞춰진 사회, 정형화된 상품에 대한 불편함이 낳은 ‘어글리 프리티’ 열풍. 과연 10년, 20년 후 지금 이 열풍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요? 또 어떤 다른 유행이 우리를 열광케 할까요?
/이종호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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