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심영(心影), 즉 마음의 표현을 화면에 내놓는 사람입니다.”
한국 현대 동양화단의 대표작가인 남정(藍丁) 박노수(1927~2013)가 남긴 말이다. 그에게 그림은 화가의 마음 그림자였던 것. 종로구 옥인동에 자리 잡은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의 5주년 기념전 ‘심영실(心影室)’은 여기서 출발했다.
내년 8월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박노수의 1970년대 대표작 20여 점을 엄선해 보여준다. 이 시기 작품들은 남정 특유의 원색적이면서도 맑은 색채가 돋보인다. ‘심영’이라는 말을 되새긴다면 청아한 문인화처럼 보이는 전성기 수작들이다.
귀한 작품 못지않게 미술관 자체가 볼거리다. 2013년 9월 미술관으로 문 연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은 역사를 품은 건축물이다. 일제시대이던 1937년 완공될 당시 최신식의 2층 벽돌집으로, 한식 온돌에 프랑스식 벽난로 등 양옥구조를 겸비한 절충식 주택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윤덕영이 지금의 서촌에 ‘한양의 아방궁’이라 불리던 벽수산장을 조성하면서 그 앞에 딸 내외를 위해 지은 집이다. 1세대 근대적 건축가인 박길룡이 설계했다. 이후 박노수 화백이 1973년에 이 집을 구입해 살기 시작했고 1991년에는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문화재자료 1호로 지정됐다. 박 화백은 2011년에 이 집과 함께 자신의 그림, 손수 가꾼 정원과 수석, 고미술 수집품까지 모조리 종로구에 기증했고 미술관의 토대를 마련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자연과 문화와 역사가 어우러진 이곳은 서촌의 문화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그간 30만 6,000명 이상이 다녀갔다.
이번 전시 기간에는 ‘화실 겸 서재’였던 공간이 개관 후 두 번째로 공개된다. 고풍스런 베란다와 프랑스풍 난로, 화가가 생전에 쓰던 고가구를 작품들과 함께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작가의 육필원고, 관련 영상 등도 선보였다.
전시 연계프로그램으로 마련된 강연 ‘삶과 예술-서촌이 배출한 한국 미술사의 거장들’도 눈길을 끈다. 저명한 미술사학자인 이태호 명지대 초빙교수가 조선 시대 단원 김홍도,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누상동에 화실을 두고 있던 이중섭과 ‘서촌화가’ 박노수까지 서촌 지역의예술인들에 대한 강의를 골목탐방과 함께 진행한다. 한옥문화공간 상촌재에서 19, 20, 26, 27일 총 4회에 걸쳐 열린다. 강연료는 회당 1만원이며 종로문화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접수할 수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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