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유명 5성급 호텔에서 식사한 이가 있다. 이 사람이 호텔을 좋아하는 것인지 단순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인지 아니면 고액의 소비를 즐기는 사람인지를 구분해낼 수 있을까.’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현대카드는 이제 이것을 70%의 확률로 확인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또 “어느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는지를 분석해 그의 음악 취향까지 50%의 확률로 추측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현대카드의 약진은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 분석 역량 강화가 기반이 됐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최근 현대카드 스튜디오 블랙에 입주한 스타트업 멤버들과 타운홀미팅을 가진 자리에서 “무작정 마켓 셰어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왜 현대카드는 주말에만 쓰는 걸까’ ‘카드 주인은 뭘 좋아하지’ 등 사용자의 취향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드는 발급하는 데서 그치는 상품이 아니다. 지갑 속의 다른 카드들을 제치고 지속적으로 현대카드를 꺼내 들게 해야 한다는 것이 정 부회장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는 빅데이터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이미 정 부회장은 주주들 앞에서 현대카드의 투자 1순위는 회사의 안정적 성장이 아니라 디지털 전환이라고 선전포고하기도 했다. 동시에 데이터 확보, 분석 인프라 구축, 딥러닝 및 머신러닝 활용을 통해 새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 모든 역량을 투입했다.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정 부회장은 “알고리즘과 머신러닝을 모르면 임원 자리에 머무를 수 없다”면서 “알고리즘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는 파워포인트의 사용을 금지했고 e메일로 의사소통을 해서는 이른바 ‘애자일(기민한)’한 업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컨플루언스를 사용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임직원의 3분의1이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디지털과 관련한 엔지니어링 인력이고 이들과 일반 임직원이 원활히 소통하고 효율을 높이려면 일하는 방식이 변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아울러 사내 식당과 휴게실 커피머신 사용법도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선으로 적어둬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임직원은 사내에서 점심도 먹지 못하고 커피도 마실 수 없다. 실제로 임직원의 절반이 비금융권 출신이기도 하다.
이처럼 디지털 전환(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 부회장은 “조직 안에서 저항이 있다는 이유로 변화를 제안하지 못하는 것은 최고경영자(CEO)로서 일종의 배임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전환에 따른 급격한 변화를 직원들이 받아들이도록 추진력을 보이는 것이다. 그는 “비전이 있고 시장 상황이나 시대가 요구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면 설득하고 과감히 밀어붙인다”면서도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는 목소리 안에도 의미 있는 의견이 많아 내부의 반대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 역시 동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스튜디오 블랙은 현대카드의 경영 지식과 노하우를 전달하는 공간으로 110여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마케팅 전문가인 정 부회장만의 브랜딩 노하우도 살짝 공개했다. 그는 “브랜딩이란 ‘집중적인 캐릭터, 즉 퍼스널리티’를 만드는 것으로 단기적인 캠페인 효과가 아니라 한 가지 단어나 이미지를 만들어 2~3년간 집중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고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미지가 많다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 캐릭터를 놓쳐 결국 ‘노바디(nobody)’가 된다는 것이다.
/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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