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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단축 계도 내달 종료] 임금 줄어든 숙련공 연쇄 이탈..."인력 운용 막막해요"

■300인이상 중견·중소기업 비상

계도 끝나면 집중감시 예상

300인 미만 기업으로 이직

중년 직원 5명 동시 퇴사도

"정부 경직적인 제도 적용으로

경쟁력 약화 등 부작용 우려

업종특성 반영 유연근무 확대를"

근로시간 단축 계도기간이 2개월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경기도 시화공단의 한 중소기업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서울경제DB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20% 줄어 다른 회사로 옮길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무슨 수로 막습니까. 수년간 공을 들여 키운 숙련공인데 그 빈자리를 채울 생각을 하니 막막할 따름입니다.”

경기도에 자리한 산업단지에서 반도체 제조용 장비 기업 A사를 운영하는 김현철(가명) 대표는 지난 7월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계도기간이 시작된 후 회사 내 직원 10여명이 임금 보전을 위해 인근의 작은 규모 동종업종 기업으로 떠났다며 이같이 호소했다. A사는 연매출이 1,000억원, 직원 수만 500명이 넘는 중견제조업체다. 겉으로만 보면 이 회사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영향이 제한적일 것 같지만 김 대표는 인력 채용 문제로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김 대표는 “회사 규모가 크다 보니 편법이나 꼼수를 쓸 수 없고 주 52시간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생산라인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어떤 때는 연간 기준으로 20~30%씩 급여가 줄어드는 일이 생긴다”며 “계도기간이 끝나기 전에 근로시간 단축 적용에 여유가 있는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옮기는 직원들 때문에 벌써부터 새해 인력 운영계획이 틀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4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근로시간 단축 계도기간이 끝나면서 내년부터 주 52시간 적용에 본격 돌입하는 300인 이상 중견·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 대부분의 기업이 숙련인력 이탈과 신규 채용의 어려움, 인건비 상승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300인 이상 사업장은 올해 말 6개월의 계도기간이 끝나면 정부의 집중적인 감시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인력 유출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상황이다. 인력 이탈은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상대적으로 시차가 있는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이뤄지는 양상이다. 심각한 문제는 이들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력 이탈이 임금 감소분을 보전하기 위한 게 대부분인 만큼 현실적으로 막을 명분이 없는데다 숙련직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해당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종업원 수 400명 규모의 항공 부품업체 B사를 운영하는 박지원(가명)씨는 “최근 40대 중년 직원 5명이 한꺼번에 퇴사했다”면서 “한 달에 300만원 받던 월급이 200만원대로 떨어지자 자식들 교육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옮기게 됐다며 미안해하더라. 사장 입장에서 ‘몰래 돈을 더 챙겨줄 테니 일해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퇴사한 직원 가운데 근속기간이 가장 짧은 직원이 5년8개월, 제일 긴 직원이 7년5개월이었다”면서 “업종 특성상 제조공정에 최소 3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숙련공이 필수적인데 젊은이들은 아예 중소기업에 오지 않으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근로시간 단축까지 적용되면) 어떻게 회사를 굴리라는 말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인력 운영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 현장에서는 탄력적 근로제의 단위시간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가 명확한 방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비판을 사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기존 2주, 3개월에서 각각 3개월, 1년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로봇 개발업체 C사의 대표는 “애플이나 구글 등 글로벌 기업에 근무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일한다”며 “좋은 제품을 내놓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되기 때문에 자신의 노동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업에 사람을 많이 뽑으라고 하지만 막상 기업이 필요로 할 때 인력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현재 최대 3개월간 사용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를 노사 합의만 있으면 최대 1년까지 사용하도록 완화해야 하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으니 기업들은 줄도산하라는 말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근로시간 단축 계도기간이 2개월도 채 남지 않은 만큼 현실적이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반도체 장비업체 D사의 대표는 “같은 제조업이라도 반도체 부품은 업황과 원청회사의 주문에 따라 생산물량의 변동 폭이 심하다”면서 “최소 4~5년 이상인 선박 수주와 달리 반도체 설비는 여러 회사의 부품이 한 설비라인에 순차적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납기일의 변동성이 심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는 정부의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현장에 적용할 때 좀 더 세밀하게 접근해 업종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 그 자체보다도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제도를 경직적으로 적용하는 게 문제”라며 “기업주가 주 52시간 초과근무를 지시할 경우 형사처벌 사안으로 넘어가는데 기업 경영이 위축되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부분의 중견·중소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 이슈로 인해 노동비용 인상에 따른 충격이 가시화하고 있는 만큼 탄력근무제 확대 등을 통해 현실적인 접근법을 찾아야 한다”고 짚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시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근로자가 자발적인 선택에 따라 여가시간과 근로시간을 결정할 때 최고의 효용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은 정부가 제약을 두면서 오히려 근로자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막고 있다”면서 “중소기업 재직자 중 상당수가 근로시간 단축으로 수입이 줄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정부가 국가만능주의에 빠져 있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1년 단위로 주 52시간 근로제를 탄력 적용하면서 장기적으로는 근로시간에 대한 일방적인 국가통제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민우·김연하·김경미·심우일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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