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청년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최대 자동차 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생산 라인에서도 지난 몇 년간 신입 사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12년 198명을 시작으로 올해 상반기까지 약 6,700명을 특별고용했다. 이들은 모두 협력업체의 정규직, 현대차 생산 라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현대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는 모두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다. 현대차의 생산 라인 안에서 금속노조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신규채용에는 벽이 생겼다. 사실상 생산직에는 청년 신입사원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막혔다. 현대차에 정통한 관계자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도 맞지만 청년층을 고용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도 있다”며 “하지만 현대차의 경우 채용인원만 보면 이 둘에 대한 균형은 현실적으로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그나마 나은 사례다. 청년층의 취업 문을 좁혔지만 정규직이 특별고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GM의 경우는 다르다. 정규직 노조가 제 식구 챙기기를 하면서 비정규직부터 내몰고 있다. 올해 군산공장이 폐쇄될 당시 사내 비정규직들은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고 쫓겨났다. 반면 정규직 노동자들은 1인당 2억원 안팎의 희망퇴직금을 받고 떠났다. 복직을 위해 남은 인원들도 30개월간 생계유지지원금(180만~225만원)을 받고 있다. 군산공장 정규직들이 다른 공장으로 복직을 할수록 현장 비정규직의 일자리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들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지만 적자에 허덕이는 한국GM은 그럴 여력이 없다.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내 비정규직 협력사 직원이 1만명 넘게 정리됐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은 혈세 수조원을 받을 때 약속한 일부 임금 반납을 번복하면서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공생의 약속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철밥통’으로 변한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 챙기기가 강해지면서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조직이 늙어가며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2004년 평균 근속 연수가 13.6년이었는데 올해는 19.1년까지 5.5년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임금 노동자 평균 근속 연수(6년), 증가폭(1.6년)의 3배가 넘는다. 늙어가는 조직에 생산성은 정체되는 상태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시간은 26시간가량으로 현대차의 해외공장들보다 최대 10시간 넘게 더 걸린다. 한 경쟁업체의 임원은 “정년이 긴 것은 고용안정 측면에서는 좋지만 생산성에선 반대”라며 “더 이상 바뀐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의 근속기간이 13년에서 19년으로 증가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8년에서 11년으로 3년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새로운 피가 수혈된 영향이다. 현대차 노조는 현재 정년을 60세에서 국민연금 수령 시기인 65세까지 늘려달라는 요구를 매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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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늙어가는 기득권 노조가 점점 ‘밥그릇’에 심각히 취해가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용세습이다. 노조의 기세가 강한 공공 부문과 대기업 생산직에서 고용세습과 거래가 횡행하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민주노총 소속의 서울교통공사는 전체 직원의 11.2%(1,912명)가 친인척 관계이고 이들을 중심으로 정규직화가 이뤄졌다는 것이 알려지자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실에 따르면 고용세습 조항을 단체협약에 포함하고 있는 노조는 13곳(현대자동차·금호타이어·현대로템·성동조선해양·S&T중공업·S&T대우·TCC동양·두산건설·태평양밸브공업·롯데정밀화학·삼영전자·현대종합금속·두산모트롤)에 달한다. 지난해와 올해 한국GM과 기아차 노조 간부가 정규직 전환, 취업을 대가로 적게는 수 천만원, 많게는 19억원(28명)가량의 돈을 받은 취업 사기가 적발되기도 했다.
권력화된 노조가 최소한의 사회적 변화마저 거부하며 한국 경제와 산업이 공멸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완성차 업계의 절반의 연봉으로 자동차 공장을 만드는 ‘광주형 일자리’에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예고하며 반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경쟁 심화와 노동 비용 상승으로 한국 경제의 체력이 저하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권력을 가졌다고 인식하는 노조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도훈 경희대 특임 교수는 “개별 사업장의 노동자가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노동자가 살 수 있는 데 기여해야 한다”며 “기업뿐 아니라 권력화된 노조도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국 산업이 산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부 대기업과 공공 부문 노조의 높은 연봉과 고용 안정이 다른 노동자를 발판으로 얻은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1억원에 달하는 연봉과 정년 보장은 청년 실업과 협력사들의 이익 위에서 마련된 것을 알아야 한다”며 “‘광주형 일자리’ 같은 실험을 통해 기존 강성노조에는 충격을, 지역에는 일자리를 주고 경제의 체질을 개선 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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