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라이더들에게 가을은 조급해지는 계절이다. 과거의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특히 봄·가을이 아름다운 나라였다. 하지만 이제 봄·가을은 합쳐봐야 한 달 남짓한 느낌이고 그나마도 봄은 미세먼지에 정복당했다. 여름·겨울은 바이크는커녕 실외활동 자체가 힘들 정도로 기후가 혹독해졌다.
그래서 한반도의 라이더들은 가을에 기를 쓰고 달린다. 일 년에 몇 번 되지도 않는 좋은 날씨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코스 선정에도 공을 들이게 된다. 지도에서 강원도 일대의 고도가 높고 구불구불한 길을 골라 코스를 짜면 대체로 즐거운 라이딩이 보장된다. 동호회원들이 추천해준 좋은 코스도 항시 업데이트한다.
이렇게 점찍어둔 라이딩 코스 중 올가을 가와사키 W800과 함께 다녀온 곳은 소백산 죽령, 경주 불국로, 포항 호미로와 동해 7번 국도, 영월 수라리재다. 경주와 포항, 동해와 영월은 ‘반국(半國)투어’로 한꺼번에 다녀왔다. 2박 3일 동안 서울~경주~포항~울진~영월~서울을 찍는 바쁜 현대인의 투어다. 그렇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훌륭한 코스였다. 불국사를 지나 석굴암으로 이어지는 불국로는 엄청나게 구불구불한 와인딩 코스로 아무래도 관광객 차량이 많아 좋은 풍경을 눈에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이라이트는 석굴암을 구경하고 다시 경주풍력발전 전망대로 향하는 길이었다. 역시 불국로의 한 구간인데 산자락의 거대한 풍력발전기 사이를 모터사이클로 달리면서 잠시나마 천국을 가로지르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 동해 7번 국도는 워낙 유명한 만큼 좋았지만, 기대 이상의 코스가 바로 포항 호미곶을 한 바퀴 도는 호미로다. 역시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달릴 수 있는데다 길이 오밀조밀해 달리는 재미가 컸다. 호미로를 거쳐 동해 7번 국도를 달리다 들르게 되는 망양휴게소는 언뜻 평범한 국도 휴게소지만 건물 뒤로 동해안 바다가 펼쳐지는 어마어마한 입지를 자랑한다. 휴게소 푸드코트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으며 동해안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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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들른 곳은 수라리재. 오르막길에 5개의 헤어핀(U자형 급커브)이 이어져 있는 코스다. 중간 헤어핀 정도에서 사진을 찍으면 누구나 컴퓨터 바탕화면 같은 장관을 담을 수 있어 뿌듯한 곳이기도 하다.
단풍이 한창이던 때 찾아간 곳은 소백산 죽령이다. 날씨가 살짝 꾸물거렸지만 제대로 물든 은행나무·단풍나무를 감상하고 올 수 있었다. “역시 바이크를 타기를 잘했다”고 되새기며, 슬슬 바이크를 ‘봉인’하고 봄을 기다릴 계획이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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