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23
prev
next
지금껏 이런 고려는 없었다. 이게 진짜 고려다. 비색 청자와 정교한 불화를 비롯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팔만대장경과 나전철기 등을 만들어낸 고려 문화의 정수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해 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하는 특별전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은 해외 박물관 11곳을 포함해 총 45개 기관이 소장한 최상의 고려 문화재 450여 점을 보여주는 사상 초유의 전시다.
지금으로부터 딱 1,100년 전인 918년, 태조 왕건은 통일국가 고려를 세우고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개경을 수도로 삼았다. 고려는 육로와 해로를 통해 활발한 교류를 펼쳤고 그 이름이 세계로 퍼져 지금 우리나라를 칭하는 코리아(Korea)의 어원이 됐다. 전시의 시작은 활력 넘치던 개성의 모습, 최상의 아름다움을 구현한 왕실 미술로 구성됐다. 개성 부근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며 지금은 미국 보스턴박물관이 소장한 ‘은제 금도금 주자(주전자)와 받침’은 화려함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대나무 조각으로 에워싼 것 같은 주전자는 긴 댓가지를 휘어놓은 듯한 손잡이에 죽순이 자라난 것 같은 입 부분을 갖추고 있다. 뚜껑은 적당히 꽃잎 벌어진 연꽃이 두 층을 이뤘고 그 위에 봉황을 꽂았다 떼었다 할 수 있는 구조다. 고려 장인의 창의성과 기술력이 돋보인다. 음각으로 문양을 새긴 부분에는 금도금을 해 금색과 은색이 화려하게 엇갈린다. 고려 시대 은제 주전자로는 현존하는 유일한 유물이다.
고려와 불교문화를 떼놓고 볼 수는 없다. 합천 해인사가 소장한 보물 제999호 건칠 희랑대사 좌상은 10세기 중반 목조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데 1,000년 만의 외출로 이미 전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희랑대사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할 때 도움을 준 ‘정신적 스승’이라 박물관 측은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소장한 ‘태조 왕건상’을 북한에서 대여해 나란히 전시하고자 했지만 개막 당일까지 성사되지 못했다. 조금 늦더라도 언제든 대여가 허가되면 희랑대사와 태조 왕건을 함께 전시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전시장에는 왕건상 자리가 빈 연꽃 받침만 놓인 채 비어있다.
금(金)으로 그린 고려 불화는 얇은 비단을 들춰보는 듯 섬세하고 정교한 미감을 자랑한다. 전 세계에 약 160여 점 전하는데 일본을 비롯한 해외 유출작이 대부분이고 국내에는 20여 점 정도만 존재한다.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이 소장한 14세기 ‘아미타여래도’는 고려 불화 중에서도 아미타여래만 그려놓은 독존 형식이라 세계적으로 10점도 안될 만큼 희귀하다. 지난 2012년에야 비로소 고려불화라는 게 밝혀진 이 유물은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후원으로 해외 나들이가 성사됐다. 최 회장은 개막식이 열린 3일 직접 박물관을 찾아 “찬란한 고려의 문화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감사드립니다”라고 방명록에 적고 전시장을 둘러봤다. 이외에도 다수의 명품 고려불화와 다양한 소재의 불상을 만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금동십일면천수관음상’은 40여 개의 손을 가진 천수(千手) 관음보살의 독특한 도상 때문에 유독 많은 관객들이 호응했다.
전시 고려인의 일상이었던 차(茶) 문화, 청자 등에서 알 수 있는 고려의 공예와 디자인 감각 등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이자 국내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활자인 ‘복’자도 실제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3월3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