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을 키워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지난 7년간 장외에서 기업가치가 100억원에서 8,000억원까지 80배 이상 상승했다. 방탄소년단을 초기 발굴해 투자하며 간접적으로 키워낸 곳이 국내 벤처캐피털(VC)이다. 2013년 방탄소년단이 데뷔하기 직전 초기투자를 주도한 VC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빅히트엔터에 투자했다”며 “다른 VC들 역시 입소문을 통해 서로 소개하고 소개받으면서 자금을 댔다”고 밝혔다. 올 10월에는 국내 대형 VC인 스틱인베스트먼트가 기존 VC의 보유지분을 인수했는데 이 거래 또한 VC와 빅히트엔터의 네트워크를 통해 진행됐다. 비상장 기업이다 보니 이 같은 거래 역시 VC들끼리의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금융당국이 혁신기업의 자금조달을 돕기 위해 비상장투자전문회사(BDC) 제도를 내년부터 도입하지만 비상장 벤처·스타트업 투자의 주축인 VC의 참여가 법으로 원천봉쇄돼 실효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1일 금융위원회는 BDC를 도입해 비상장 기업에 시중 자금을 유입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BDC는 주식시장에 상장한 후 비상장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투자목적회사다. BDC는 증시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 중 70%를 비상장 기업에, 나머지는 국공채에 투자한다. 그동안 비상장 기업 투자는 환금성이 떨어지고 투자하기도 번거로워 개인투자자들의 접근이 어려웠다. BDC가 시행되면 간접적으로 개인투자자들이 비상장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이 제도에는 정작 벤처기업 네트워크가 가장 뛰어난 VC가 제외돼 ‘팥소 빠진 찐빵’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회사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인데 이들 금융투자회사만 BDC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VC는 중소기업창원지원법상 창업투자회사,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기술금융사업자로 자본시장법상 BDC를 만들 수 없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아직 제도 준비 초기 단계로 관련 법에 근거해 규정을 했을 뿐”이라는 원론적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빅히트엔터의 투자 사례처럼 벤처·스타트업은 설립 초부터 VC가 투자에 관여하고 규모가 커지면 투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부 VC 중심으로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특히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VC와의 네트워크가 워낙 강력해 VC 없이 비상장 전문투자사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제도를 위한 제도일 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으로 성장한 배달의민족·블루홀·쿠팡과 같은 회사들도 국내외 VC들이 창업 초기부터 투자를 진행했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선진 사례로 꼽는 미국의 경우 1980년에 BDC를 도입하고 30년이 지났지만 상장 BDC가 40개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며 “그만큼 비상장 기업 투자가 어려운데 정작 비상장 기업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에만 문을 열어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호현·김민석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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