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한국법인(애플코리아)이 국내 갑질 혐의를 놓고 오늘부터 공정거래당국의 심판대 위에 선다. 애플은 해당 혐의를 부인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나 당국의 징계가 확정될 경우 적게는 수백억원대에서 많게는 수천억원 이상의 과징금을 물게 될 가능성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애플코리아의 거래상 지위남용 혐의에 대해 첫 전원회의를 연다. 주요 혐의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국내 이동통신 3사에 광고비, 대리점 판매대 설치비, 제품수리비 등을 떠넘겼다는 내용이다. 보통 첫 회의에선 혐의 사실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피심인(심사·심판을 받는 대상)의 입장, 향후 일정 등이 다뤄진다. 과거 유사 사례를 본다면 통상 3~4차례 정도 회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 무렵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심판의 관건은 증거 확보다. 국내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은 사석에서는 애플의 부당행위에 대해 하소연을 하고 있지만 정작 공개된 형태로 이를 진술하는 데 대해선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대형 이통사 간부는 “애플과 맺은 각종 계약에는 상호 비밀을 유지한다는 내용이 있다”며 “이 때문에 애플로부터 불공정한 행위를 당해도 (공정위 심판정에서) 이통사들이 공공연히 진술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전했다. 애플이 혐의와 관련된 각종 의혹에 대해 입을 다물거나 부인해온 것도 국내 협력사와 맺은 비밀유지계약을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정보통신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따라서 공정위가 이통사들의 진술 여부와 별도로 자체적인 조사를 통해 애플코리아의 갑질을 증명할 문건이나 녹취록 등 물적 증거를 확보했는지 여부가 중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공정위는 이번 사안을 조사한 기간이 약 2년에 달하는 만큼 우월적 지위 남용 등의 입증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코리아의 불공정거래행위 혐의 내용중 국내 협력사들의 피해금액이 가장 큰 것은 광고비 전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애플코리아가 2009년말 아이폰을 국내에 출시한 이후 1년여간은 자체 예산으로 TV광고를 진행하다가 2011년 무렵부터 국내 이통사들에게 광고비 부담과 관련한 논의를 한 것으로 안다”며 “그 이후부터는 광고비 집행액이 연간 최소 200억원대에 상당한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설명했다. 2011년부터 애플코리아가 매년 200억원 이상씩 협력사에 광고비를 전가했다면 국내 이통사들은 8년간 1,600억원 이상 피해를 봤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더해 제품수리비, 가판 판매대 설치비 등의 비용부담까지 감안한다면 국내 이통사들에게 전가됐을 비용은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통사들은 공정위가 조사를 시작한 2016년 이후에도 애플코리아의 ‘갑질’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통사의 한 실무자는 “지난 2년간 애플코리아가 우리(국내 이통사)를 대하는 태도가 개선됐다고 느끼진 못했다”며 “지난해나 올해 신형 아이폰 출시 때에도 과거 관행과 달라진 것 같진 않다”고 전했다. 실제로 애플코리아측은 국내 통신업계에서 제기되는 갑질 논란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브랜든 윤 애플코리아 대표는 올해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했지만 불공정행위 관련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따라서 공정위 심판정에서 애플이 승소하거나, 패소하더라도 과징금 등이 미미할 경우 애플은 별다른 시정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고 관련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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