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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철 총장 직무정지 결정 유보] 제동 걸린 '과속 司正'...과기부 리더십 시험대

과학계 "소명기회 불충분" 주장에

KAIST 이사회도 "신중히 처리"

사상초유 수장 공백 사태는 면해

신용현 의원 "유보 결정은 다행

정치적으로 거취 좌지우지 안돼"

신성철(앞에서 두번째) KAIST 총장이 1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이사회 회의장에 자신에 찬 표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사회가 14일 신성철 총장에 대한 거취 결정을 사실상 무기한 보류하면서 비위 혐의를 앞세워 ‘과속 사정’을 했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행보에는 일단 제동이 걸리게 됐다. 과기정통부는 신 총장의 비위 행위가 명확하며 총장직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과학계는 신 총장에게 소명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고 과학계 인사를 정치적 이유에서 성급하게 물갈이한다고 보고 있어 이번 유보 결정이 도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KAIST 이사회는 오전10시30분에 시작됐지만 신 총장의 직무정지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오가며 오후2시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사들은 당초 과기정통부의 입장을 들은 뒤 표결을 위해 신 총장의 소명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신 총장의 직무정지와 관련해 과반수 이사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자 결국 이날 표결 진행을 포기했다. 이르면 1월로 예정된 다음번 이사회에서 재논의하기로 했지만 그때가 돼도 결정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이날 이사회에는 거취 논의 대상인 신 총장 본인과 다른 9명의 이사진이 모두 참석했다. 9명 중 3명은 과기정통부·교육부·기획재정부 등 정부 측의 당연직 이사 3인이어서 직무정지 필요성에 힘을 실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다른 이사들은 여기에 적극 찬성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원 KAIST 기획처장은 이사회가 종료된 후 “총장 직무를 정지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차기 이사회에서 다시 심의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신 총장을 끌어내리려 했던 과기정통부로서는 기운이 한풀 꺾이게 됐다.

이사회의 이번 결정은 사상 초유의 KAIST 수장 공백 사태를 피하면서도 과기정통부의 체면 하락도 최소화한 솔로몬의 판단으로 평가된다. 만약 이날 표결을 강행해 직무정지를 가결했더라면 과학계가 정치 외풍에 흔들린다는 우려를 샀을 것이고 반대로 부결시켰다면 과기정통부가 책임론에 직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다시 과기정통부에 돌아갔다. 특히 이번 사태로 해당 부처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과학계 인사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정치 삭풍이 더욱 확산될까봐 술렁이는 과학계의 불안감을 진정시키고 학문적·산업적·사회후생적 측면에서의 연구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한 대형 과학기관의 고위관계자는 “과학기술 분야의 예산 규모가 상당히 커진 만큼 이를 투명하게 집행하고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정부의 ‘정풍’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자칫 ‘사정 바람’을 무차별적으로 일으켜 정치적 코드가 맞지 않거나 평소에 밉보인 연구기관 인사들의 꼬투리를 잡아 낙마시키는 것으로 곡해되지 않도록 세심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과기정통부는 그동안 신 총장의 비위 행위가 명확하다며 총장직 유지가 어렵다는 당위성을 주장해왔지만 과학계는 정치적 표적감사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과학계는 “평생 연구와 관련해 잡음이 없었던 신 총장을 유죄 추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발표할 정도로 정부와 날 선 대립을 보이는 상황이다. 여기에 네이처 등 국제학술지조차 국내 과학자들이 신 총장에 대한 조사를 ‘정치적 숙청’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정부로서는 과학계 여론 달래기가 시급한 상황이다. 한 과학계 인사는 이와 관련해 “정권이 바뀐 후 전 정권이 임명한 과학계 수장을 갈아치우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며 “이번 사태도 신 총장에게 소명 기회가 적절히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급격하게 총장직에서 내려오게 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언급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정치적 의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과학계 수장을 갈아치우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사회에서 유보를 시켜 (비리) 결과가 나온 후 결정 내리기로 한 점은 다행”이라며 “KAIST 총장은 과학기술계에서 상징적인 자리인데 쉽게 거취를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언급했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학기술계 기관장들을 물갈이하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의원은 “과학기술계 기관장은 정치적인 입장이 중요한 자리가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을 갖고 일하는 자리”라며 “임명 때부터 전문적인 식견을 우선으로 하고 운영 철학을 가진 이들을 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신 의원은 지난해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수장을 임명할 때 현장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강동효·권경원기자 kdhy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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