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위성호 신한은행장과 김형진 신한금융투자 사장 등 차기 회장 후보군을 전격 교체하면서 KB금융에 이어 ‘젊은 신한’ 바람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지난 2010년 신한사태의 중심에 섰던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가깝던 인물들을 교체했다는 점에서 신한사태로 본의 아니게 물러났던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 측과 화해하는 등 그동안 신한금융 내 ‘고름’과 같았던 과거 아픔을 이번에 완전히 종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에 7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면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세대교체에 가깝다. 1위 경쟁을 하는 KB금융그룹이 젊은 KB금융을 표방, 50대인 허인 국민은행장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신한은행도 젊은 CEO로 간판을 교체할 필요성이 커졌다. 하지만 위 행장과 김 사장은 차기 회장 후보군이라는 점에서 조 회장이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인사가 기존보다 두 달이나 당겨졌고 당사자인 위 행장도 모르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외부에서는 조 회장의 전광석화 같은 결정에 놀라는 분위기지만 위 행장으로서는 ‘역습’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위 행장은 지난 주말 자택에서 만난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에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며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위 행장도 임기인 3월까지 정상출근하면서 후임자에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내홍 재점화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이번 신한금융의 세대교체에 따라 조 회장이 추구해온 ‘원(ONE)신한’ 전략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 회장과 위 행장 간의 동거를 놓고 금융권에서는 끊임없이 알력설이 제기돼왔다. 그 이면에는 신한사태 이후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라응찬 라인’과 ‘한동우 라인’ 등이 존재하는 등 파벌갈등이 잠재해온 것이다. 신한의 1인자였던 라 전 회장과 2인자였던 신 전 사장의 갈등으로 촉발된 신한사태는 지난 2010년 신한은행이 신 전 사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소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라 전 회장과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은 신 전 사장이 이희건 신한금융 명예회장의 경영자문료 15억6,600만원을 횡령해 비자금으로 유용했다며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수사과정에서 라 전 회장과 이 전 행장이 2008년 서울 남산자유센터 주차장에서 이상득 전 의원 측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3억원을 전달했다는 일명 ‘남산 3억원’ 의혹이 터졌다. 횡령액 일부가 MB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쓰였다는 신한은행 비서실 직원의 진술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2010년 수사를 진행하면서 3억원의 수수자를 규명하지 못하고 라 전 회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신한사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신한사태를 계기로 라 전 회장, 신 전 사장, 이 전 행장 모두 불명예스럽게 신한을 떠나게 됐다.
하지만 올해 초 신한 사태를 재조사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지난달 라 전 회장 측에 대한 재수사를 권고했다. 특히 과거사위는 ‘라응찬 라인’인 이 전 행장과 위 행장이 신한사태 재판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허위 증언을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과정이 다시 불거지면서 신한 내부에서는 ‘다시 제2의 신한사태가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됐다. 나아가 내부에서는 “한동우 전 회장이 신한사태 수습 과정에서 라 전 회장이 밀었던 위 행장을 앉힘으로써 금융지주 넘버원(회장)과 넘버투(행장)의 힘이 막상막하인 관계를 만들어 예견된 인사논란으로 불거졌다”는 원죄론도 나왔다.
더 복잡해진 것은 신 전 사장은 라 회장의 측근이던 위 행장이 자신을 공권력을 이용해 내쳤다는 ‘차도살인’ 인식이 강했고 이 때문에 조 회장이 신 전 사장과의 교감하에 위 행장 교체를 주도했다는 시각도 있다. 신 전 사장과 화해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신한사태가 불거질 불씨가 남아 있어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내걸고 이참에 신한금융그룹 내 아킬레스건과 같았던 신한사태를 말끔히 해소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린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한사태 이후 8년이 넘도록 신 전 사장이 반발하는 상황에서 위 행장을 물러나게 함으로써 신 전 사장에게 대승적 화해 제스처를 보냈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전 사장은 본지 통화에서 “(조 회장과) 만난 적도 없고 전화통화도 한 적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이번 인사를 계기로 위 행장이 임기를 마치고 내년 3월 조용히 용퇴하면 신한은 그동안 썩을 대로 썩은 고름을 도려내고 그 자리에 젊은 CEO를 통해 새살을 돋게 하면서 과거의 단단한 조직으로 재탄생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 전 사장은 이번 인사에 대해 “같은 사람들이 몇 년째 그 자리에 있을 정도로 (한 회장 시절) 성장판을 덮어놓고 게으른 인사를 해왔다”고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다소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일각에선 조 회장이 이번에 파격적인 인사를 한 배경에는 지난해 리딩금융그룹 자리를 KB금융에 빼앗겼음에도 신한금융 1인자와 2인자(회장과 행장) 사이 불협화음이 끊임없이 불거지는 것에 대한 위기감도 반영된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조 회장은 “인사는 회장 권한이고 사외이사분들도 저를 지지해줬다”고 밝혔다. 채용비리와 남산 3억원 사건 등 거대한 외풍을 맞이한 시점에서 이대로 두면 신한의 지배구조를 놓고 이전투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현재 인사권이라는 칼자루를 쥔 조 회장에게 그룹지배력 강화를 위해 다시 한번 힘을 실어준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한은행장, 신한금융 회장 선임 과정에서 모두 조 회장이 이겼지만 몇 번씩 충돌했을 정도로 관계가 불편했던 둘을 회장과 행장에 앉혀 어정쩡한 동거를 시킨 것 자체가 화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차기 행장으로 내정된 진옥동 신한금융 부사장과 연임에 성공한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은 각각 2008년과 2003년에 신한은행 오사카 지점장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어 ‘일본통’ 전성시대라는 해석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재일교포 주주들이 2세대, 3세대로 내려오면서 과거 같은 지역별 색채는 덜하기는 하나 과거 오사카 지점장을 하면서 주주관리를 해왔던 분들의 신임은 두터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기혁·황정원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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