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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한파에 얼어붙은 기부]불황·경영난에 기부 포기하거나 현물로…'쪼그라든 온정'

중기 모금액 현물포함해도 15%↓

올 목표 4,105억 달성 못할수도

24일 서울 중구 쪽방촌 인근에서 한 노인이 한파에도 손수레를 끌고 있다. /송은석기자




완구업체 A사는 올해 10년 넘게 지속해온 현금기부를 접었다. 수년간 불황으로 기부 여력이 점점 바닥을 드러내던 차에 올 영업이익이 많이 줄어든 게 직격탄이 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올해는 현금기부 대신 부담이 적은 현물기부로 바꿨다”며 “회사로서는 ‘이익도 급감했는데 기부가 웬 말이냐’는 주주들의 눈총을 외면하기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올해 기부금 모집액이 줄어든 데는 기업의 절대다수인 중견·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자리하고 있다. 대기업만 해도 경기 악화에도 불구하고 사회공헌에 대한 정부와 시민단체의 압박 등으로 지난해 수준 이상의 기부금을 냈다. 하지만 경기 불황 등 외풍에 취약한 대다수 중견·중소기업은 기부금을 줄이거나 기부 대신 다른 형태의 사회공헌활동에 나서는 추세다. “올해 기부금 액수 감소는 십시일반의 위력을 보여준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제조업 공장이 밀집한 울산의 경우만 해도 올해 분위기는 예년과 사뭇 다르다. 울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희망2019나눔캠페인’ 울산 지역 모금액은 12억6,000만원(20일 기준)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35% 수준에 불과하다. 이 지역에 자동차·조선·석유화학 업종 기업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저조한 모금 실적이라는 게 안팎의 평가다. 올해 영업이익이 크게 준 현대자동차만 해도 올 3·4분기까지 전년 동기 대비 52% 많은 448억원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일대 완성차 협력업체를 비롯해 조선업체와 기자재업체들이 구조조정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업들이 기부를 생각조차 못 할 만큼 심각한 경영난에 내몰리면서 전체 기부금이 기대를 훨씬 밑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중소기업의 기부심리 위축은 수치로 확인된다. 중소기업사랑나눔재단에 따르면 12월 현재 재단이 중소기업들로부터 모집한 기부액(현물 포함)은 전년 대비 10~15% 정도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재단 관계자는 “예년 수준이면 30억원 규모의 기부가 들어와야 하는데 올해는 3억~5억원가량 모집액이 줄 것 같다”며 “기업의 경영환경이 악화되다 보니 기부를 포기하거나 제품기부로 돌리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득주도 성장 등 문재인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정책의 부작용이라는 볼멘소리도 적잖이 들린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최저임금이 올해 16.4% 오른 데 이어 내년에는 10.9% 인상되지 않느냐”며 “대기업의 실적 악화로 가뜩이나 수주 감소가 불 보듯 뻔한데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기업들의 기부 인심도 박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요즘에는 낯선 기부·자선단체도 많이 늘어 모금활동에 대한 불신도 적지 않은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부·후원이 줄면서 한겨울 추위에 무방비로 노출된 영세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주민 대부분은 연탄으로 겨울을 난다. 비용이 석유보일러 대비 4분의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올해 연탄값을 19.6%나 인상한데다 후원금도 줄면서 연탄이 크게 부족하다. 백사마을에서 50년 이상 살고 있는 김길자(70)씨는 “지난해에는 한 달에 300장 들어오던 연탄이 올해는 100장에 불과하다”고 털어놓았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도 “연탄 장수 기준으로 지난해에 비해 35% 정도 후원이 줄면서 저소득 취약계층의 겨울나기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들 것 같다”고 걱정했다.

미혼모 지원단체도 힘겹기는 매한가지다.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기업들로부터 물품기부를 받지만 미혼모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기저귀나 쌀과 같은 생활필수품이 아닌 목욕장난감과 같은 특이물품이 대부분이라 감사하면서도 아쉬울 때가 많다”면서 “연말에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연중 꾸준하게 후원과 지원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심우일·서종갑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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