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회복에 대한 시그널이 예상보다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협력업체 모임인 협성회에서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내년 반도체 투자를 크게 기대하지 말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올 상반기까지 협력업체들에 ‘기다려 달라’던 삼성전자의 입장이 한층 보수적인 방향으로 돌아선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이미 내년 투자를 축소하겠다고 공식화했다. 메모리 반도체 조정기에 대비해 연 단위로 수립하던 투자계획도 분기 단위로 조정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 축소는 글로벌 반도체의 수요 위축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예측에 따른 것이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클라우드 투자 조정 움직임 등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반도체 수요는 축소될 수밖에 없고 수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투자 축소는 반도체 장비업체에 직격탄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내년도 매출이 올해 예상 매출액인 171억1,000만달러에서 132억달러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의 생산이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반도체 호황이 고점을 찍고 하강하는 신호는 수출통계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2018년 11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을 보면 지난달 수출물량지수는 159.88로 1년 전보다 2.9% 상승했다. 올해 들어 수출물량은 매달 10% 안팎의 증가세를 이어왔지만 푹 꺼진 셈이다. 이는 반도체가 포함된 전기 및 전자기기 수출 물량이 6.4% 증가하는 데 그친 영향이 크다. 한은 관계자는 “그간 전기 및 전자기기 수출 물량이 매달 20% 이상 늘었는데 더 이상의 증가는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재 D램 수요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올해 메모리 초호황을 주도했던 서버 업체들도 최근 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하락세에 D램 가격의 추가 하락을 예상하고 구매를 미루고 있다. 실제 지난달 서버용 D램 가격은 전달 대비 2.9% 하락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이터센터에 대한 글로벌 투자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인공지능(AI)·5G 등장 등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장기적인 메모리 수요는 증가세가 확실하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아직 이들 기술과 관련한 시장이 성숙하지 않은 만큼 추후 또 다른 메모리 슈퍼 호황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빅데이터와 AI, 자율주행차 등 모든 기술이 대용량 데이터를 전제로 한 만큼 메모리 반도체가 필수적”이라며 “내년 5G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반도체 수요도 다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년 하반기부터 서버용 D램 수요가 모바일용을 추월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폴더블폰’의 본격 양산 등 내년에는 호재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이 올해 감소하다가 내년부터 다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IDC에 따르면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은 지난해에 비해 3% 감소했지만 내년에는 2.6%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폴더블폰 등 대형 화면 및 하이엔드 스마트폰에 대한 교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오는 2022년에는 스마트폰 판매량이 15억7,000만대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효정·임진혁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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