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에도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증시와 부동산시장의 불안에다 연말 상여금 등의 특수로 요구불예금이 한 달 사이에 11조원이나 증가했다. 다만 정기예금과 정기적금에 기준금리 인상 효과가 반영되면서 내년부터는 머니무브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MMDA 포함) 잔액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1.50%에서 1.75%로 0.25%포인트 올린 지난달 30일 354조3,968억원에서 27일 기준 365조5,728억원으로 11조1,760억원 증가했다.
요구불예금은 급여통장이나 공과금 이체통장 등 연 이자가 0.1% 수준에 불과한 수시입출금식 예금이다. 통상적으로 기준금리가 오르면 줄어드는데 최근 늘어난 것은 증시가 불안하고 부동산도 가격 하락 신호가 나오고 있어 일시적으로 넣어두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달 초까지만 해도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이 감소 추세를 보여 국내외 고금리 상품으로 이동하는 ‘머니무브’가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으나 연말 특수가 작용해 반짝 급등한 영향도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통상 대부분의 기업이 연말에 상여금을 지급하고 개인들도 설날을 앞두고 세뱃돈과 용돈 등 현금지출 필요성이 커지면서 요구불예금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한 현상은 해를 넘기며 새해 소망을 이루기 위한 투자, 소비, 금융 포트폴리오 재정비 등으로 이어져 금세 해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의 다른 관계자는 “개인의 경우 연말 상여금의 영향으로 수시입출금이 늘고 기업들도 최근 들어 기존에 보유했던 3개월 단위의 거치식 정기예금을 빼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요구불로 돌리고 있다”면서 “투자처를 찾아 새로운 사업계획을 마련하면 다시 감소 추세로 전환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실제 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분에 맞춰 이달 초부터 예·적금 수신금리를 0.1~0.5%포인트 올리면서 기본금리가 연 2%대로 올라섰고 정기예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정기예금 잔액은 같은 기간 468조712억원에서 471조1,835억원으로 3조1,123억원 늘었다. 다만 정기적금의 경우 한 달 새 558억원 증가해 사실상 제자리였다. 통상 기준금리가 인상되고 6개월 이내에 수신상품 금리에 반영되는 점과 아직 증시나 부동산 등 국내 투자전망이 불투명한 영향을 감안하면 안전성을 우선시하면서 1년 미만의 정기예금 수요가 계속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 규제가 커 투자처가 많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재은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이사는 “전반적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많이 안 좋다 보니 사람들이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하고 있고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단행함으로써 시장금리도 매력적으로 고객에게 어필해 예금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증권 투자수익이 좋았는데 올해는 상반된 결과여서 시장 유동성이 큰 가운데 위험을 기피하는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은행들은 기존의 단기성 자금이 예적금으로 이동하는 흐름에 대비해 상품 다양화를 통해 자금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KB국민은행의 KB스타정기예금은 비대면 전용이면서 계약기간 중 급히 자금이 필요할 경우 중도해지 없이도 일부만 인출할 수 있다. 신한은행의 쏠편한정기예금은 단돈 1만원으로 1개월까지 가입이 가능하다.
김현섭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PB팀장은 “정기예금 금리가 1년 전보다 오르기는 했지만 자산가들은 금리가 올랐다고 언급하는 수준이고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예금 비중을 특별하게 높이지는 않는다”며 “예금이 늘어나는 추세가 나타나는 것은 전반적으로 불안심리가 높아지면서 저축을 하려는 사회 일반적인 현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황정원·김기혁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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