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잘 지내요. 당신은 어때요? (I‘m fine, thanks. And you?)”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 익숙한 말에 요즘 우리 국민 대부분은 아마 “아니오(No)”라고 답할 것 같다. ‘그놈의 경제’ 탓에 점점 먹고 살기가 팍팍해진다 느끼는 사람들로서는 당연한 대답이다. 이 당연한 답변 속에는 국내 파인다이닝(Fine Dining) 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도 숨어 있다.
파인다이닝은 영어 단어 ’파인(훌륭한)과 ‘다이닝(정찬)’이 결합한 말로, 패밀리 레스토랑과 같은 일반적인 캐주얼 다이닝보다 수준 높은 식당을 칭할 때 쓰인다. 영화 속 상류층이 자주 찾는 최고급 레스토랑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문제는 업계의 정점에서 우리 식문화를 이끌어야 할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이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통계에 따르면 국내 외식산업 시장 규모는 2016년 기준 120조원에 육박하고 사업체 수는 65만개, 종사자 수는 200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 중 파인다이닝이 차지하는 비중은 0.1%에 불과하다. 파인다이닝이 전체 외식 시장에서 약 10%의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과 비교해 100분의 1도 안 되는 수치다.
국내에서 유독 파인다이닝이 외면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들의 호주머니가 ‘파인’하지 않아서다. 최고급을 지향하는 파인다이닝은 고가일 수 밖에 없다. 1인 저녁식사를 기준으로 주류를 포함해 한 끼 최소 10만원 이상은 내야 한다. 명품 가방과 같은 일종의 사치제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사치스러운 한 끼를 위해 지갑을 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상황에서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의 도약을 위한 방법으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무리를 해서라도 가볼 만한’ 파인다이닝을 선보이는 것이다. 제주도 여행 경비도 파인다이닝에서의 식사비 보다 적어도 두 배는 비싸다. 그럼에도 지난해 해외여행객 수는 사상 최초로 3,000만명 돌파가 예상된다. 넉넉치 않더라도 그만한 값어치가 있기에 다들 떠나는 것이다. 현재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이 과연 ‘제값’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점심·저녁 메뉴의 이원화, 와인 소비 촉진 프로모션, 세컨드 브랜드 개발 등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중 세컨드 브랜드 개발의 경우 파인다이닝 선진국에서도 활발히 쓰이는 방법이다. 예컨대 사업성이 낮은 파인 다이닝으로 명성을 얻고 가성비 좋은 다른 대중브랜드로는 수익을 내는 식이다.
업계에서는 세계적인 레스토랑 안내서 ‘미슐랭 가이드’의 서울편 발간을 계기로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이 도약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미슐랭 가이드는 어디까지나 안내서일 뿐이다. ‘파인’하지 못한 소비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국내 파인다이닝 시장은 언제나 제자리 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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