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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서플라이체인]4,600개 車부품사중 80곳만 R&D 투자...낯뜨거운 미래경쟁력

<1>산업흐름 못따라가는 공급 생태계

수십년간 전속거래 안주...품질·생산성 제자리걸음

조선도 저가선박만 올인...수주풍년 낙수효과 못누려

반도체장비 국산화율 20%...기술력 1위자리 뺏길수도









경기도 시화공단에 위치한 현대차 1차 납품업체 A사는 최근 전기차 부품 공급을 위해 독일 보쉬와 접촉했다. 최근 국내 완성차 업체의 영업악화에 따른 연쇄적 경영난으로 부품 업체의 각자도생을 용인하는 분위기 속에 이뤄진 행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이 회사의 한 임원은 “보쉬가 요구하는 기술 및 품질 수준, 원가 등 모든 부문에서 우리가 맞출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실토했다.

A사의 사례는 우리 자동차 부품 업체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완성차 업체만 바라보며 수십년간 전속거래에 안주해온 결과 낮은 기술력과 생산성이 고착화됐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 산업의 무게중심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 등 미래 차로 급속히 바뀌고 있는 현실에서 부품 업체의 연구개발(R&D) 역량 악화는 차 자체의 경쟁력 하락으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산업 흐름을 따라가기가 버겁기는 다른 업종도 엇비슷하다. 지난해 액화천연가스(LNG)선,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수주 호조로 회복세가 뚜렷한 조선업종은 역설적으로 생태계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 부품 등 기자재 업체가 아직도 컨테이너선·벌크선 등 저가 선박 위주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팔로어에서 챔피언으로 위상이 바뀐 메모리 제조기술 역시 장비·소재 분야의 낮은 국산화율로 1위 수성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 재계 임원은 “폐쇄적인 공급구조에다 부품사 구조조정을 미뤄온 결과가 아니겠느냐”며 “차세대 분야 기술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부품 업체 육성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시흥시 시화공단의 한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차 부품 업체 중 1.7%만 미래 차 대비=미국은 연간 차 생산량이 우리(402만대, 2018년 기준)의 3배(1,130만대)에 가깝다. 하지만 부품 업체 수는 5,600개로 우리보다 1,000개 많다. 자동차 부품 산업의 밸류체인이 많게는 7차 협력사까지 완성차 업체와 얽혀 있다. 우리 부품 업체들이 얼마나 난립해 있는지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들 4,600개 부품 업체 가운데 R&D에 최소 수준 이상의 비용을 쓰고 있는 업체가 고작 1.7%(80개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연간 100만달러 이상을 3년 연속 R&D에 투자한 회사가 80개(2017년 기준)”라며 “나머지는 미래를 준비할 여력 자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 비중은 지난해 2%를 넘겼다. 근 10년 뒤인 오는 2030년이 되면 전기차(하이브리드 포함) 판매 비중이 30%(산업연구원)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등 미래 차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면 전체 부품(3만개)의 37% 수준인 1만1,000개가 사라진다는 보고서(자동차부품소재산업기술연구조합)도 나왔다. R&D에 등한한 부품 기업은 도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자동차 업계의 한 임원은 “결국 부품 업체 구조조정을 통해 산업의 연착륙을 꾀하려면 옥석 가리기가 불가피하다”며 “모든 업체에 골고루 지원하기보다 여력을 갖춘 기업 위주로 선별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부품 업체들이 당분간 먹고살 것은 내연기관 부문”이라며 “여기에서 번 돈으로 전기차 부품 관련 회사를 인수합병(M&A)하는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주 1위 조선도 부품 업체는 고사 위기=지난해 한국 조선은 LNG선에서 70척 중 66척(94%)을 따냈다. 사실상 싹쓸이했다. 고부가와 저부가의 경계선에 있다는 VLCC 분야에서도 39척 중 34척(87%)을 수주해 독주체제를 굳혔다. 하지만 협력업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한 대형 조선소에 부품을 납품하는 양산의 한 업체 사장은 “요즘 조선업 회복은 협력사 입장에서는 ‘속 빈 강정’에 가깝다”며 “협력업체까지 낙수 효과가 발생하려면 LNG선·VLCC가 아닌 컨테이너선 수주가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선종은 (중국 등에 밀려) 우리한테 안 오는 것 아니냐”며 “주변에 상당수 업체가 이 업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염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벌크선 등 저가 선종에 매몰돼 있는 업체의 상당수는 고사하기 직전이라는 얘기다. 한 조선 업체 임원은 “중국의 관 주도형 조선 산업이 기술과 품질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해외 선주들이 한국으로 다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런 선종까지 기대하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국산화율이 장비는 20%(2018년 금액기준), 소재는 50%,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은 48%로 추산되는 반도체도 안심하기는 어렵다. 후방 산업이 취약하면 메모리 기술력도 예상보다 일찍 따라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메모리 제조기술에는 장비·소재기술도 녹아 있다”며 “해외 업체에 장비·소재를 의존하는 이상 계속해서 기술력 1등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장비·소재 분야의 국산화가 돼야 메모리 인력의 쓰임새도 많아져 인재나 기술 유출의 우려가 줄어든다”며 “정부도 이런 점을 인식하고 ‘반도체=대기업’이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 이 분야 기술기업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훈·구경우·박한신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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