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구매를 앞으로 6년에 걸쳐 현재의 5배인 2,000억달러(약 225조4,000억원)까지 늘리겠다고 미국에 제안했다는 소식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국과 중국이 국내 반도체 산업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모종의 거래를 했을 수 있다는 노파심에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다만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있는 미국이 대중 반도체 의존도를 높일 수 있는 중국의 제안에 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회의적 시선이 적지 않다.
일단 국내 기업들은 크게 두 가지 점을 들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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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구체적인 반도체 종류가 언급되지 않은 점이다. 업계의 한 임원은 “중국이 수입하려는 반도체가 메모리인지, 중앙처리장치(CPU)인지, 시스템반도체인지 종류를 언급하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에 미칠 파장을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임원도 “만약 메모리라 하더라도 미국 업체 마이크론이 6년 내 중국 공급을 두세 배 늘리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메모리 한 개 생산라인 투자에만 2년 이상, 금액으로는 20조~30조원이 들어간다. 메모리 업계는 이미 과점체제가 구축돼 있어 단기에 생산량을 크게 늘리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제안이 사실이라면 퀄컴의 통신용 칩이나 시스템반도체 위주의 중국 수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경우 중국 시안에서 낸드를,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D램을 만들고 있는데 중국이 미국산 메모리 수입을 늘린다고 해서 이곳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적다”고 예측했다.
미국이 중국의 제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 반도체산업협회의 존 네프 대표는 “‘중국제조 2025’ 달성을 위해 고안된 술책”이라고 혹평했다. 업계의 한 임원은 “미국이 D램 업체 푸젠진화에 대해서는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했고 화웨이·ZTE에도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불이익을 주는 상황”이라며 “미국이 순순히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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