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삼성전자의 경기 화성 반도체 사업장을 찾은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왕세제 위로 드론 하나가 띄워졌다. 이 드론은 화성사업장 전경을 입체적으로 담았다. 이 영상은 5세대(5G) 통신장비를 통해 왕세제가 착용한 가상현실(VR) 기기에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무함마드 왕세제는 탄성을 자아냈다.
지난 11일 UAE 아부다비에 이어 약 2주 만에 경기도 화성 반도체 사업장에서 성사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무함마드 왕세제 간 회동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첨단 기술 시연이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해 신기술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꿈꾸는 UAE로서는 삼성의 5G 기술이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이 부회장은 말보다는 실제 경험을 통해 삼성의 기술력을 과시했다.
무함마드 왕세제는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산업의 쌀로 부상하고 있는 반도체, 네트워크 장비 등에 대해 큰 관심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UAE는 석유 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2010년 혁신 프로젝트(UAE Vision 2021)를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의료·보안·서비스·제조· 미래연구·기반구축 등 6개 영역에서 23개 세부 전략을 짜놓은 상태다. 그만큼 네트워크 장비·단말기·칩셋 등 5G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삼성의 기술력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실제 무함마드 왕세제는 삼성 경영진으로부터 5G·반도체 현황과 미래 사업 추진 관련 브리핑을 받은 직후 궁금한 사항을 이 부회장에 직접 물어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UAE가 2020년 두바이 엑스포를 앞두고 중동·아프리카 지역 최초로 5G 이동통신 서비스 전면 상용화를, 아부다비는 180억달러를 들여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인 ‘마스다르 시티’를 건설 중”이라며 “UAE가 자원 부국에서 더 나가 첨단 산업 분야를 일구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무함마드 왕세제는 방명록에 “더 나은 삶을 위해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혁신과 최신기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UAE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 큰 관심이 있으며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들을 지원한다”고 썼다. 이에 이 부회장은 왕세제에게 기념 문구가 새겨진 12인치 반도체 웨이퍼를 선물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회동으로 삼성과 중동 국가 간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삼성과 UAE 관계는 건설·엔지니어링 쪽에 치우쳐 있었다. 삼성물산이 2009년 완공한 두바이 162층짜리 건물인 ‘부르즈 칼리파’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 이벤트를 계기로 5G·AI 등 미래 사업 분야에서도 협력 관계가 구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재계의 한 임원은 “삼성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부품을 만드는 기업인 만큼 첨단 기술 분야에서 비즈니스 관계가 확대될 것”이라고 봤다.
미국의 파운드리 업체 ‘글로벌파운드리’ 매각과 관련한 논의도 오갔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글로벌파운드리 지분 90%를 보유한 최대주주 ATIC가 UAE의 국영기업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삼성을 인수 후보군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임원은 “UAE가 글로벌파운드리의 주인인 데서 보듯 UAE가 첨단 기술에 관심이 많다”며 “글로벌 파운드리와 삼성 간 비즈니스 협력 관련 딜 등도 예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한편 이 부회장은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무함마드 왕세제 간 정상회담 직후 열리는 공식 오찬에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과 함께 참석할 예정이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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