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2일 자동차 시장에 역사적인 사진이 떠돌았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의 최고경영자(CEO)가 미래 차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하고 손을 잡은 사진이다. 100년 ‘앙숙’의 대표들이 활짝 웃고 있지만 왠지 멋쩍었다.
자동차 업계에는 미국 랩퍼 캔드릭 라마가 ‘컨트롤’ 비트에 디스(Disrespect·비하하는) 랩을 떨어뜨리기 전부터 흥미로운 디스 전쟁이 있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트랜드를 이끈다는 벤츠와 BMW, 아우디의 디스전이다. 서로 잘났다는 내용인데 랩이 아닌 광고로 디스해 전 세계 자동차 팬의 흥미를 샀다.
2002년 BMW가 벤츠를 도발한 광고는 잘 알려졌다. 벤츠의 상용 트럭이 BMW 차들을 싣고 배달을 가는 사진에 “벤츠도 운전의 즐거움을 전할 수 있다”고 적힌 광고다. 대형 고급 세단으로 유명한 벤츠를 스포츠감성이 뛰어난 BMW가 디스한 것. 당시 벤츠는 “우리 차가 없으면 운전의 즐거움도 전하지 못하는 게 BMW”라고 응수했다고 전해졌다. 상용 트럭 라인 업이 없는 BMW를 비꼰 것이다. BMW는 역동적인 이미지를 앞세워 벤츠를 디스한 적이 또 있다. 대표 스포츠유틸리티차(SUV) X5가 표범 무늬의 위장막을 하고 얼룩말 위장을 한 벤츠의 SUV ML을 뒤쫓고 있는 광고다. 두 회사의 신경전은 2016년 훈훈하게 끝났는데 당시 창사 100주년을 맞아 “내가 최고”라고 자축하던 BMW에 벤츠가 “우리와 100년간 경쟁해줘서 고맙다”는 광고를 냈다. 물론 최초의 자동차 회사인 벤츠는 “그전 30년은 좀 지루하긴 했다”는 말도 남겼다.
2006년 BMW와 아우디의 디스전은 업계의 전설로 통한다. 당시 아우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올해의 차’로 선정됐다. BMW는 3시리즈가 정면을 향해 내달리는 광고를 싣고 아우디를 축하하며 “남아프리카에서 올해의 차로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2006년 전 세계 올해의 차 수상자가”라고 썼다. 아우디는 곧바로 “축하한다”는 광고를 내고 끝에 “르망 24시 레이스 6년 연속 우승자가”라고 덧붙였다. 아우디 차의 성능이 BMW보다 낫다는 것이다. 2006년 아우디와 BMW의 디스전은 벤틀리의 등장으로 더 유명하다. 프리미엄 브랜드인 BMW와 아우디가 서로 잘났다고 티격태격하자 벤틀리의 회장이 쇼파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가소롭다”는 듯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린 바로 그 광고다. 자동차 팬들 사이에선 이 광고가 BMW와 아우디의 디스전의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 벤틀리는 광고 디스전에 뛰어들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벤틀리코리아 관계자는 “유명한 그 광고를 알고 있다”며 “하지만 본사 사람들에 물으니 ‘그런 광고를 한 적이 없다’고 답하곤 했다”고 말했다. BMW와 아우디의 디스전을 벤틀리로 끝내고 싶은 팬심이 만든 일화라는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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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줄 알았던 BMW와 아우디의 광고 디스전은 2009년 미국에서 또 벌어졌다. 이번엔 아우디가 먼저였다. 아우디가 LA에서 A4 RS를 내세워 “체스는 뭐하러 해? 차라리 운전을 할래”라는 옥외광고를 한 것이다. 아우디는 BMW가 모터사이클오너스오브아메리크(MOA) 대회를 열며 ‘체스’ 게임을 이용한 문구를 남긴 것을 희화화하고는 “니 차례야, BMW”라고 도발했다. BMW는 옆 광고판에 M3를 앞세워 “체크메이트(바로 내가 이겼네)”라고 썼다. 아우디는 스포츠카 R8을 내놓고 “그 졸(M3)로는 우리 왕(R8)을 못잡아”라고 응수했다. 엔진이 차체 중심 뒤에 있는 정통 스포츠카가 없는 BMW를 비웃은 것. BMW는 R8 뒤로 포뮬러원(F1) 머신을 새긴 큰 애드벌룬을 띄웠다. “게임 끝(Game over)” 1950년에 F1에 진출한 BMW(2009년 철수)는 앞서 2008년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우승했다. 아우디는 F1에 진출한 적이 없었다. 아우디가 이어 “니 럭셔리 뱃지 확인해봐”는 광고로 고급 브랜드치고는 투박한 BMW를 지적했지만, BMW가 응수하지 않으면서 2009년 디스전은 마무리됐다.
독일 3사는 따져보면 역사가 얽혀있다. 벤츠는 1886년 세계 최초의 내연 기관 자동차인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만든 회사다. 아우디의 설립자 아우구스트 호르히(라틴어 어원 Audi)는 벤츠의 엔지니어 출신이었다. BMW는 1959년 벤츠에 매각될 뻔했다. 다임러와 BMW의 주요 주주이던 헤르베르트 크반트(Herbert Quandt)가 벤츠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재를 털어 BMW의 대주주에 오르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최고의 경쟁자가 됐다.
웬일인지 100년간 디스전을 벌이던 독일 3사가 요즘 뭉치고 있다. 2015년 세 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고정밀 지도제작 업체 ‘히어(Here)’를 인수하더니 올해 벤츠와 BMW가 모빌리티 서비스를 위한 조인트벤처(JV)를 설립했다. 자동차 산업을 집어삼킬 듯한 미래 변화의 파고가 100년 전쟁도 무색하게 할 만큼 무섭다는 뜻이 아닐까.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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