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파나소닉과 세계 1위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중국 CATL. 지금은 세계적 회사로 발돋움했지만 가능성을 알아본 곳은 중국 레전드캐피털이었다. 중국 최대 렌터카 서비스 업체인 ‘CAR’는 지난 2007년 9월 설립돼 70개 주요 도시에서 726개의 서비스 지역을 운영 중이다. 이 회사 역시 레전드캐피털의 포트폴리오에 속해 있다.
2001년 설립된 레전드캐피털은 레노버 창업주인 류촨즈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해 설립된 벤처캐피털(VC)이다. 중국은 물론 400개 가까운 글로벌 스타트업에 투자한 큰손이다. 특히 첨단 인공지능(AI)부터 인터넷 플랫폼, 게임, 자동차 판매, 자동차 부품, 바이오헬스, 화장품, 병원 체인 등 가리지 않고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기업에 베팅해 장기 투자한다.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만 12곳. 2016년 범(汎) LG가(家)의 VC인 LB인베스트먼트와 함께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대한 투자에 참여해 유명해졌다.
현대차(005380)가 레전드캐피털과 손잡은 배경도 이런 맥락이다. 현대차는 단순히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라 모빌리티 시대 솔루션 기업으로의 변신을 추구하고 있다. 주력 사업인 자동차뿐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기업 분야, 그리고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까지 동시에 공략하기 위해 레전드캐피털만큼 좋은 파트너도 없다.
현대차는 이미 투자 확대에 대한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지난달 27일 투자업계 관계자들과 진행한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향후 5년간 총 45조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신차 출시를 위한 투자나 시설 개선 비용을 제외하고 미래 기술 관련 투자가 전체의 32%(14조7,000억원)나 차지했다. 모빌리티 부문에서도 데이터 관리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6조4,000억원), 자율주행 커넥티비티 부문에서 소프트웨어 부문(2조5,000억원), 기타 부문(선행 개발 등·2조5,000억원)으로 다양하다.
현대차가 레전드캐피털과의 거래를 통해 적극적 지분투자나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대차의 지난해 3·4분기 기준 현금 및 단기금융상품 등은 26조원 수준이다. 이중 순현금은 13조7,000억원이다. 대규모 리콜과 같은 우발위험이나 운전 자본, 주주환원 금액 등 필수 유동성(14조~15조원) 비용을 고려하면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적극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정의선 수석부회장 시대를 연 현대차그룹이 외부 수혈을 통해 경쟁력을 단숨에 끌어올리고 있는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일관생산체계라는 최적의 효율성을 무기로 양적 성장 시대를 이끌었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종 결합을 통한 질적 성장을 이끌고 있다. 이번 주총에서 외국인인 알버트 비어만 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기 공채를 없애고 전 부문에서 수시 채용 방식으로 경력을 채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순혈주의 탈피가 핵심 키워드다.
지난해부터 실질적인 변화도 시작됐다. 현대차는 중국 배터리 공유업체 임모터(500만달러)와 인도 자동차 공유 업체 레브(1,230만달러), 동남아 그랩 등에 투자해 경영에 참여하고 협업한다. AI 펀드(30만달러)를 넣는 등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외부수혈 없이는 성장뿐 아니라 존재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며 “향후 투자 및 M&A 시장의 큰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강도원·김상훈기자 theon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