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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단행된 LG그룹 주력 계열사의 이사회 개편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간 대표이사 최고경영자(CEO)가 겸직해왔던 이사회 의장을 따로 떼어내 양자 간 역할분담에 확실한 가르마를 탔다는 분석이 나온다. 즉 대표이사 CEO는 전문화된 본연의 사업에, 이사회 의장은 통합적이고 긴 안목으로 미래 성장 동력 마련에 치중하게끔 했다. 전자·디스플레이·유플러스 등 3개사 이사회 의장에 그룹 지주회사인 ㈜LG의 권영수 부회장을 앉힌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자동차그룹도 기아차 주총을 통해 정의선 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했다. 이번 선임으로 정의선 체제의 공식 출범을 위한 첫 단추가 끼워졌다는 평가다. 포스코는 최정우 회장과 장인화 사장 2인 대표 체제로 개편됐다.
이날 주총의 특징은 국민연금의 굴욕이다.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원칙)를 도입하며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강조했지만 국민연금이 반대한 주요 기업들에 대한 사외이사 선임 등의 안건은 주주들이 찬성해 대부분 통과됐다.
◇LG, 구광모 체제 도약 위한 이사회 새판 짜기=LG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구 회장 취임 이후 첫 주총과 이사회를 열어 이사회를 개편했다. 권 부회장이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에서 구본준 부회장과 하현회 부회장이 맡았던 기타 비상무 이사에 선임돼 핵심 계열사 의사 결정에 참여한다. 특히 권 부회장은 두 계열사의 이사회 의장에도 올랐다. 조성진 부회장(전자), 한상범 부회장(디스플레이)은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계열사 경영에만 집중하게 된다. 권 부회장이 이미 LG유플러스에서도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어 3개 계열사의 이사회 의장직을 수행하게 되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지주사를 대표하는 권 부회장이 키를 잡고 계열사 간 사업 협력, 시너지 확보 등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지주사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재계의 한 임원은 “권 부회장이 3개 계열사 CEO를 두루 거친 만큼 이사회의 균형 잡힌 운영에 적임자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지난해 6월 공식 출범한 구 회장 체제의 LG가 조직 정비를 마무리한 셈”이라고 말했다.
LG화학도 신학철 대표이사를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3M 출신의 신 부회장은 지난해 말 선임 당시 LG화학 최초의 외부 출신 CEO로 화제를 모았다. 이사회 의장은 상근고문으로 물러난 박진수 전 부회장이 그대로 맡는다. LG이노텍·하우시스·상사 등 일부를 제외한 주력 계열사는 CEO와 이사회 의장이 모두 분리되는 셈이다.
◇표 대결 앞둔 정 수석부회장 기아차 사내 이사 선임…해외연기금도 우군=정 수석부회장이 기아차 주총을 통해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면서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체제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특히 국민연금이 한국전력 부지 매입 당시 사외이사로서 감시의무에 소홀했다며 재선임에 반대한 남상구 가천대 석좌교수도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장에 재선임됐다.
정 수석부회장은 기아차 사내이사 재선임에 이어 오는 22일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총을 통해 대표이사로 선임된다. 이렇게 되면 정 수석부회장 체제가 사실상 공식화되는 셈이다. 현대차 주총은 초미의 관심이다.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표 대결 때문이다. 하지만 기관투자가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과 국민연금이 잇달아 엘리엇의 제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과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캐나다연금·온타리오교직원연금 등 5곳의 해외 연기금도 현대차 편에 서 현대차가 승기를 잡았다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포스코, 최정우 체제 강화…효성은 원안대로 통과=포스코는 김신배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했다. 김 의장은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SK C&C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오인환 사장과 유성 부사장이 물러난 사내이사에는 김학동·정탁 부사장이 선임됐다. 업계 관계자는 “오 사장과 유 부사장의 퇴임으로 최 회장의 친정체제가 더욱 강화됐다”며 “김 부사장과 정 부사장의 이사진 발탁은 최 회장 체제의 안정과 포스코의 품질 경쟁력 향상을 동시에 잡는 인사”라고 말했다.
CEO 직속 자문기구인 기업시민위원회도 출범했다. 초대 위원장에는 성균관대 총장을 지낸 김준영 성균관대 이사장이 선임됐다.
동국제강도 이날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김연극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지난해 7월 사장으로 승진한 김 사장이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동국제강은 장세욱 부회장과 김 사장의 각자 대표체제가 됐다. 효성은 국민연금의 반대를 딛고 손병두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박태호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의 사외이사 재선임 및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의 감사위원 선임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이상훈·구경우·박한신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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