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에서 중앙정부에 신청하는 복지사업의 90% 이상이 허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자체 간 ‘복지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복지사업 허용 기준을 너무 느슨하게 적용해 제어기능이 상실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16일 본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세연 자유한국당의원실에서 입수한 ‘신설·변경된 사회보장제도 협의조정 실적’ 자료를 보면 신규 사업 도입 건수는 지난 2014년 75건에서 2016년 878건, 2018년 934건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 혹은 변경하려면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라 사업 타당성과 기존 제도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보건복지부와 협의해야 한다. 신청 대비 허용 건수를 보면 2015년 361건 신청에 291건이 허용돼 80.6%의 통과율을 나타냈으며 2016년 1,071건 중 878건(81.4%), 2017년에는 1,230건 중 1,079건(87.7%) 등이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 2년차인 지난해에는 1,072건 신청에 977건이 허용돼 91.1%의 통과율을 기록했다.
올 1·4분기의 경우 사회보장 협의신청 건수 543건 중 251건의 도입이 확정됐고 철회 및 반려는 10%에 머물렀다. 확정된 지자체 사회보장사업 예산은 2016년 552억원에서 2017년 2,206억원, 2018년 2,278억원으로 급증했다.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서울시 중구의 공로수당, 경기도의 청년연금 등처럼 지자체가 유사한 형태의 ‘헬리콥터 복지’를 쏟아내고 있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제동을 걸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10~20% 수준에 그치는 지자체들도 인구유출을 피하기 위해 덩달아 복지 도미노에 동참하면서 재정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경남 함양군 3대 함께사는 세대에 효도수당 지원 검토
전월세 대출이자에 초등생 가방값 대주는 지역 수두룩
공무원들 복지부에 “우리 지자체장 말려달라” 진풍경
본지가 16일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지자체가 무분별하게 현금살포 사업을 펼치고 있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 1·4분기까지 보건복지부와 협의가 완료된 사회보장사업 총 258건 중 95%(246건)가 현금으로 지급된다. 최근 2~3년 사이 지방자치단체별로 출산장려금 중심의 지원책을 폈다면 이제는 청년과 노인들에게 주거비·교통비 명목으로 현금을 쏟아내는 것이다. 특히 지역별로 명칭만 다를 뿐 지원 대상과 규모도 차이가 크지 않고 기초연금·아동수당·청년내일채움공제·청년구직활동지원금·추가고용장려금 같은 정부 지원사업과도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전남 곡성군은 이달부터 만 19~39세 무주택 청년에게 월 20만원씩 1년간 최대 240만원을 나눠주는 취업자 주거비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올해부터 부산시 영도구는 최대 10개월간 교통비로 월 6만원을, 대구 동구는 자기계발비로 6개월간 월 10만원을 청년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곡성군·영도구·동구의 재정자립도는 각각 16.7%, 14.6%, 19.9%로 10%대에 불과하다. 중앙정부에 재정지원을 늘 요구하면서도 형편이 어려운 지자체마저 무리하게 현금복지를 확대하고 있다.
김 의원은 “현재 지자체마다 유사하게 쏟아내는 현금성 복지사업은 재정 효율성과 정책추진의 효과에 대해 제대로 된 검토가 있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 대다수”라며 “스웨덴·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현금복지 비율을 줄이고 서비스 복지로 방향을 전환하는 ‘복지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특히 자율성을 명목으로 주변 지역에서 시행하면 ‘나도 질 수 없다’는 식으로 선심성 정책이 난무하는 것이 문제로 꼽힌다. 사업별 기준이 제각각인데다 명확하지도 않다. 예를 들어 부산광역시에서는 중구·영도구·사하구·금정구·동래구·부산진구·기장군 등이, 대구광역시도 동구·서구·수성구·달서구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지역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만 18~39세 청년들에게 4대 보험료를 비롯해 교통비와 주거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지역의 한 주민은 “같은 도시여도 사는 지역에 따라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청년 및 노인들에게 지역별 명칭만 다른 주거비, 교통비 우후죽순
단발성 사업이어도 도입 후엔 멈출 수 없어 재정악화 우려
현금복지 영역도 다양화되는 추세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전체 243개 광역·기초 지자체 중 92%(224개)가 아동수당과 유사한 출산지원금 및 축하금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만 7,000억원의 현금지원이 예산으로 책정됐다. 게다가 청년층에 대한 주거 지원 명목 사업도 많아졌다. 경기 안양시, 경남 진주시, 전북 정읍시는 신혼부부 전월세자금 대출이자를 연간 최대 100만원씩 지원하기로 했다.
또 재정자립도가 14.4%인 전북 장수군은 지역 인구 유지를 위해 결혼축하금으로 현금 1,000만원을 주고 경남 진주시와 서울 금천구는 중고등학교 신입생에게 1인당 30만원의 교복구입비를 나눠준다. 경남 하동군은 초등학생 책가방 구입비로 15만원을 지급한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현금복지 사업을 펼치는데 형평성 차원에서도 제어가 필요하다”며 “재정요건이 상대적으로 나아 과하게 추진하는 곳은 정부의 재정보전을 삭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자체의 복지 확대에 대해 일정 부분 중앙의 컨트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역 복지정책의 대부분이 지자체장의 관심사와 공약에 따라 나오게 되는데 시급성과 지속 가능성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선거에 대비해 정치적으로 쓰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자체장들이 무분별하게 신규 사업을 추진하자 복지부와 협의에 나선 지자체 공무원들이 뒤로는 사업을 제지해달라고 하는 진풍경도 벌어질 정도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자체장이 밀어붙여 어쩔 수 없이 들고 오면서 중앙정부가 합리적으로 막아달라고 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단발성 복지라고 하더라도 시작한 뒤에는 정책을 뒤집기가 거의 불가능해 향후 지방재정 부담만 악화될 우려도 나온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지역의 특색을 반영하는 사업 외에 유사중복되는 지자체의 현금복지는 중복 수혜와 방만한 재정지출 문제를 불러오게 된다”며 “중앙정부의 복지도 빠른 속도로 늘어가는 상황에서 지자체도 포퓰리즘 식으로 흘러가고 있어 기본적인 자격요건 등은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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