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는 규제 샌드박스 도입이라는 시도 자체를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새로운 예외허용기준이 추가로 마련됨에 따라 당초 취지에서 비켜나가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규제혁신을 위한 공무원들의 적극 행정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소극 행정으로 새롭게 세부규정들이 생겨나면서 ‘샌드박스’를 통한 규제 완화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실증특례 또는 임시허가 후 사업화까지는 별개의 루트로 진행해야 돼 불확실성이 높다는 지적도 강하게 제기된다. 분야별 전문성 활용을 극대화시키려고 산업통상자원부(산업융합), 과학기술정보통신부(ICT융합), 금융위원회(금융혁신), 중소벤처기업부(지역혁신) 등 4대 분야로 구분해 추진하고 있는데 대다수가 산업 진흥 부처이다 보니 차후 규제를 맡고 있는 환경부·보건복지부 등과 충돌이 생겨 상용화에 발목이 잡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신기술·신서비스에 대한 임시허가를 받더라도 본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별도의 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한 점이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다. 해당 규제의 구체화 방안이 명확하지 않아 리스크를 덜기 위한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익명의 한 기업 관계자는 “샌드박스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와도 임시허가 승인이나 규제허용이 보장돼 있지 않다”며 “기업이 연구개발(R&D)과 투자비용을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하는데 사업화 시점이 돼서 다른 논리로 반대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정부에서도 그린스케일의 ‘블루투스 전자저울’과 코너스의 ‘지능형 화재대피 유도시스템’이 신기술로 인정돼 임시허가를 받았으나 본허가까지 가지 못해 시장에 출시될 수 없었다. 부처와 국회가 이해관계자의 반발을 의식해 관련 법령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영향이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혁신팀장은 “정부가 규제를 푼다는 것이 법이나 시행령 같은 윗단을 주로 얘기하는데 실제 기업이 혁신을 하다 보면 막히는 것은 시행규칙이나 각종 조례 등의 밑단”이라며 “밑단까지 다 풀려면 공무원들에게 그럴 만한 힘이 실려야 하는데 지금은 책임부터 따지다 보니 어떤 공무원도 시도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 샌드박스가 희망고문이 된다는 설명이다.
규제 샌드박스 1호인 마크로젠의 ‘소비자직접의뢰(DTC) 유전체 분석을 통한 맞춤형 건강증진 서비스’ 역시 산업부의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 승인을 받았으나 차후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규제를 넘어서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유전자 검사의 긍정적 효과까지 증명하라는 식으로 규제 샌드박스 내에서도 디테일한 규정이 생겨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른 참여기업 관계자는 “마음껏 뛰어놀라고 하더니 이렇게 놀고 저렇게 놀라고 규칙을 만들어 취지가 바뀌고 서비스 자체에 대한 검증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규제 샌드박스 내에서 계획대로 결과물이 나왔을 경우 적극 행정을 통해 본허가 또는 법 개정 의무화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재 임시허가기간은 2년으로 1회 연장을 할 수 있어 총 4년까지 가능하나 기간이 만료된 후에는 다시 기술 및 서비스가 불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샌드박스의 근거가 되는 정보통신융합법에는 ‘임시허가 유효기간 만료 전 허가의 근거가 되는 법령이 정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의 의무만 명시돼 있다.
최영석 차지인 대표는 “규제를 풀어줬다가 사고가 나면 본인부터 책임져야 하는데 대폭 풀 수 있겠냐”면서 “규제 샌드박스가 활성화되려면 규제 개혁 공무원에게 면책특권을 줘야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요인으로 초창기 도심지역 수소충전소 설치운영 외에 굵직한 규제 완화 건이 나오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일부 핀테크 업체들은 금융 당국이 보안 등 리스크를 이유로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할 때 은행과 같은 금융회사를 더 선호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앞서 금융위는 금융회사로부터는 27개, 핀테크 회사 등으로부터는 78개의 사전신청을 받았지만 이달 중순 처음으로 최종 지정된 혁신금융서비스 가운데 핀테크 업계에서 신청한 서비스는 4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5건의 경우 카드 업계에서 3건, 보험업권에서 1건, 은행권에서 1건씩 지정됐다. 익명을 요구한 핀테크 업체의 한 관계자는 “금융 당국 입장에서는 아무리 많은 혁신서비스가 핀테크 업계에서 나오더라도 한 번의 사고가 나면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당국이 서비스의 혁신성을 우선 심사하겠다고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금융회사 위주로 선정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핀테크 회사의 한 관계자는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심사 이의신청 제도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종=황정원·한재영기자 김기혁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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